<문화논단>정부의 脫원전 ‘화제 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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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갑’과 ‘을’이 논쟁을 하다가 갑이 밀릴 것 같으면 곧잘 화제를 돌린다.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원래 윤리·도덕 문제로 논쟁했던 게 아니다. 논쟁에서 질 것 같으니까 문제를 바꾼 것이다. 이때 구경하던 사람들은 문제의 본질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을을 탓하기 일쑤다.

KTX가 천성산을 통과하는 것과 관련한 사회적 이슈에서도 처음엔 KTX를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논리에서 밀리자 이 문제를 도롱뇽의 문제로 바꿨다. 도롱뇽 생태계 파괴를 들고나와 반대했지만, 결국 KTX가 개통됐고 지금까지 도롱뇽은 잘 살고 있다. 이것도 문제 바꾸기의 일례다. KTX 반대라는 문제를 도롱뇽 문제로 바꾼 것이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에 대한 공론화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미국 내 태양광 발전의 평준화단가(LCOE)가 원자력 발전보다 더 싸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이것도 문제 바꾸기다. 미국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마다 에너지 정책이 다르다. 그것은 기술력과 부존자원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의 풍력 발전이 원자력 발전보다 싸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풍질(風質)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에서 재생 에너지가 그리드 패리티에 도달했다는 것은 그 나라 얘기일 뿐이다. 그것을 마치 우리나라도 곧 달성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도 문제 바꾸기다.

탈원전 정책을 강행하면 전력 요금은 당연히 올라간다. 원자력과 석탄 발전이 각각 킬로와트시(kwh)를 생산할 때, 각각 50원과 60원에 불과한데 그다음 단계인 액화천연가스(LNG)는 150원, 신재생 에너지는 200원이 넘는다. 당연히 원전과 석탄 발전을 신재생과 LNG로 대체하면 전기료는 최소한 3배로 오를 것이다. 그런데 산업부는 ‘당분간’ 전기료가 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누가 당분간의 전기요금을 궁금해했나? 탈원전 정책이 이행됐을 때의 상황을 궁금해하는데 왜 당분간의 전기요금으로 답하는가. 이것 또한 문제 바꾸기다.

올여름은 몹시 무더웠다. 최대전력은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예측했던 86.1GW를 훌쩍 넘어서 92.6GW까지 올라갔다. 산업부는 전력 부족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 또한 문제 바꾸기다. 당장은 돌아가고 있는 원전이 있으니 문제가 없다. 그건 누구나 안다. 국민의 관심은 지금 탈원전 정책이 이행된 2030년 이후에도 전력이 충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당연히 5년 동안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후이다. 그런데 산업부는 늘 ‘당분간’에 대한 답을 한다.

2030년이 되면 태양광 발전이 원자력 발전보다 싸질 것이라는 말은 믿기 어렵다. 태양광 발전의 효율은 1% 올리기도 힘든 만큼 기술의 성숙도가 높다. 설령 그 말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이 역시 ‘탈원전’ 문제를 외면한 문제 바꾸기다. 2030년에 싸질 것이라면 그 무렵에 가서 공급하면 될 일인데 왜 지금 싸지도 않은 걸 공급하는가.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는 우리나라 정부의 전력수급 계획 수립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적 비용 최소화’ 그리고 ‘안정적 전력 공급’이라는 목표가 없어졌다. 대신 ‘친환경성’과 ‘안전성’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전력수급 계획이라는 논제는 똑같은데 다른 문제를 푼 것이다.

‘에너지 전환이 대세’라고 하는데, 에너지 계획에 대세라는 말도 설득력이 약하긴 마찬가지다. 에너지 계획은 현실이고 경제이지, 대세와 여론에 좌지우지되는 패션이 아니다. 이제 더는 말장난으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