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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8년 09월 12일(水)
55평 집 짓는 데 7년… 건축주는 “훌륭한 건축교육 받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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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주 피셔 부부. 그들은 “다른 분도 이 집에 가득차 있는 훌륭한 점을 우리와 함께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interest 사진
▲  피셔 주택의 외관. 단순한 상자 두개가 꼭짓점에서 이어진 무덤덤한 집처럼 보이지만 방마다 서로 다른 고유의 빛이 들어오며 벽면 또한 주변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 ⑦ 사는 법을 가르쳐 준 집

펜실베이니아 사는 피셔 부부
건축가 루이스 칸에 설계 부탁

이웃처럼 함께하며 4년간 준비
소통·수정 반복하며 3년 건축

상자형 2개 외관은 단순하지만
45도 연결로 全방향 조망 달라

“모두에 어울리는 살기좋은 집”
보편적 가치 지닌 최고 건축물


아파트 한 채만 한 주택을 설계하는 데 4년이 걸리고 짓는 데 3년이 걸렸다면 과연 이것을 이해해 줄 건축주가 있을까? 그 긴 시간이 건축가와 함께 건축을 배웠던 더없이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축주는 또 과연 얼마나 될까?

게다가 집을 짓고 나서 건축가와 함께 즐겁게 식사하며 그를 자신들의 귀중한 친구라고 생각해 주는 건축주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

7년간 건축가와 함께 보낸 시간을 “훌륭한 건축 교육을 받은 시간”이었다고 고백한 부부 건축주가 있다. 그들은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 1901∼1974)에게 부탁해 1960∼1967년에 펜실베이니아 북쪽 하트보로에 주택을 지은 존경 받는 가정의(家庭醫) 노먼 피셔(Norman Fisher, 1925∼2007)와 부인 도리스(Doris Fisher, 1926∼) 부부였다. 이들은 어린 두 딸과 함께 살려고 새집을 짓고자 했다. 8100㎡의 땅에 도로에서 깊이 들어와 지은 피셔 주택 (Fisher House, 1960∼1967)은 수령 100년이 넘는 나무들 사이에 서 있다. 그러나 거주하는 면적만 따지면 180㎡(55평) 정도의 의외로 작은 집이었다.

피셔 부부는 어떻게 집을 지어야겠다는 뚜렷한 생각 없이 지역의 건축가 몇 명을 만나 봤다. 그러나 사무소 경영상 작은 주택은 설계하지 않는다는 말만 들었다. 그 대신 이들은 자기 선생 격인 루이스 칸이라는 분이 여전히 주택을 설계하고 계시니 그분에게 부탁해 보라고 권했다. 피셔 부부는 칸이 어떤 건축가인지도 전혀 몰랐고 이름도 처음 들었다. 부부는 전화번호부에서 번호를 찾아 작은 주택 한 채의 설계를 부탁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한번 만나 대지에 함께 가 보자고 대답했다. 일주일 후 가까운 역에서 이들은 건축가를 만났다. 그가 20세기의 거장 루이스 칸이었다.

역에서 내린 칸은 키가 작고 허름한 양복 차림이었다. 이때 그의 인상은 건축주 노먼 피셔에게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부는 건축가와 이야기를 조금 나눠 보니 ‘지성과 열정 그리고 유머와 따듯함에 가득 찬’ 인물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칸은 건축주에게 첫 질문으로 어떤 방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이 말을 들은 부부는 정말 실질적인 건축가를 만났구나 하고 깊이 느꼈다. 건축주의 요구 사항을 다 듣고 나서 칸은 예산이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생각하는 예산을 말하자 건축주가 갖고 싶다던 음악실, 아트리움, 선룸에는 빨간 줄을 그으며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그러고 나서 건축가는 받아야 할 설계비와 건설비 4만5000달러를 제시했다. 건축주는 놀랐다. 건축가가 설계해 주는 주택치고는 정말로 적은 비용이었다. 그때도 이들은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가 세계적인 건축가인 줄 몰랐다.

이들은 새로 집을 지을 땅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고, 그 주택에서 의원도 열고 있었으므로 새 주택을 짓는 데 그리 서두르지 않았다. 의사였던 건축주는 낮에는 바빴고 칸도 당시에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등 많은 일로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던 때였으므로, 이들은 밤에 칸의 사무실에서 만나곤 했다. 건축주 부부가 건축가 사무소로 가서 초인종을 누르면 3층이나 4층 창에서 얼굴을 내밀고 인사하며,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스튜디오 창문에서 묵직한 정문 열쇠 꾸러미를 던져 주곤 했다. 밤 10시에 사무소에 들러도 칸은 편하게 대해 줬다.

이들은 7년간 집을 지으면서 두 달에 한 번은 만났다. 그 긴 시간은 건축가나 건축주가 서로 바라고 있는 바를 아주 치밀하게 통합해 간 시간이었다. 주택 한 채를 짓는 데 모두 9개의 안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이 주택에 의원을 함께 두려고 했으나 계획이 진행되면서 도중에 취소했다. 계획안을 받으면 부인은 무언가 바꾸고 싶어 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칸이 계획안을 계속 바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가운데 뚫린 부분을 사이에 두고 침실 두 개를 브리지로 이은 안을 제안한 적이 있었는데, 건축주 부부가 이 안에 주저하고 있었다. 이를 알아챈 칸은 브리지를 없애기는커녕 곧바로 전혀 다른 안을 구상했다. 그래서 건축주는 완성된 주택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만일 우리가 이 계획에 만족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 안을 수정하지 않고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했을 겁니다.”

칸이 설계를 시작할 때 두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고 있었는데, 완공할 때는 큰딸이 열 살 소녀로 훌쩍 자라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피셔 부부의 생각은 거장의 설계에 영향을 줬다. 수직의 외장용 목재와 내부 벽의 거친 회반죽은 미국 농가와 곳간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고 싶다는 피셔 부부의 생각에서 비롯했다. 식당에 있는 커다란 유리창도 이들이 주장해서 고친 것이다. 집의 뒤편 북쪽으로는 완만한 경사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고 습지에 숲도 넓었다. 칸은 식당이 이런 풍경에 노출되기보다는 벽으로 닫힌 침착한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 창을 작게 냈다.

그러나 건축주는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앞에 두고 닫혀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이들은 이사하고 나서 반년이 지난 후 창을 크게 내 주십사 부탁했다. 이에 칸은 그 벽을 다시 설계하고 약 2.5×2.5m의 유리창과 두 장의 판벽 창을 붙여 줬다. 두 노부부는 이 커다란 창문을 바라보며 매일 매일 식사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건축주의 맏딸 니나(Nina)의 말대로 부모님과 건축가 칸은 한 팀이었다. 건축주 부부가 요청하면 칸은 언제나 흔쾌히 들어줬다. 혹시 요구에 응해 주지 못할 때는 왜 그래야 하는지 열심히 설명해 줬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전력회사 직원이 와서 미터기를 집의 정면에 붙이려고 하자 건축가에게 전화를 걸어 집 뒤편에 달게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그때 칸은 “이 집에는요, 뒤편이라는 게 없어요”라고 했다. 그래서 벽 뒤에 미터기를 감추고 숫자만 보이게 동그랗고, 작은 유리창을 두는 것으로 해결했다.

이 주택은 기하학적으로 단순한 상자 두 개가 45도를 틀며 꼭짓점에서 이어져 있다. 한 동에는 거실과 식당이 있고 다른 한 동은 엔트런스 홀과 침실로 쓰인다. 석조의 기초 위에 높이 5.5m인 목조 입체에 사이프러스 판재를 덮었으며 창도 흔히 보는 창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 간단히 보고 이 주택은 참 무덤덤하고 재미없는 집이구나 하고 여기면 큰 오산이다. 밖에서 보면 단순해 보여도 두 입체의 면들은 각각 집으로 들어오는 느낌, 작은 마당, 냇가로 향하는 방향 등을 절묘하게 조절해 준다. 면의 방향이 모두 다르니 방에 비치는 빛과 내다보는 조망이 모두 다르다. 또 비스듬하게 방을 바라보므로 공간이 훨씬 깊게 느껴진다.

침실은 동에서 남동쪽을 향하고 있어 아침 햇빛을 잘 받고, 거실은 작은 개울과 숲을 향해 북쪽으로 큰 창을 둬 침착한 빛이 하루 종일 방에 가득 찬다. 거실의 큰 창은 있는 그대로 내다보게 하려고 여닫이로 하지 않았고, 창가에는 벤치를 뒀다. 그 대신 측면에 환기를 위한 창을 따로 더 만들어서 아침에는 해가 난로를 강하게 비춰 줬다. 이 창을 열고 벤치에 앉아 있으면 벤치 자체가 ‘방 속의 방’이다.

▲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칸은 주택이 완공된 후에도 이 집을 찾아와 함께 식사하고 건축주의 친구들과도 사귀며 그들에게 건축에 관한 짧은 토론도 하면서 집이란 무엇이고 어떤 건축이 진실한지를 들려줬다. 1970년 피셔 부부와 대화하는 중 칸은 이렇게 말했다. “주택이란 어떤 특정한 사람을 위해 설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이란 집주인이 바뀌어 다른 사람이 살게 됐을 때도 그들에게 잘 어울리고 차분함을 느끼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 어떤 가족을 위해 지어진 집이 다른 가족에게도 좋은 특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맞는 집을 지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주택에는 나도 살고 싶고 또 살 수 있다고 느껴지는 보편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들은 40년 동안 이 집에 살면서 마치 박물관의 안내원처럼 방문하는 학자나 건축가들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또 큐레이터처럼 이 집을 충실하게 돌봤다. 판재 마감에 얼룩이 제대로 생기도록 직접 자기 손으로 유지하느라 애썼고, 제대로 된 가구를 들여올 때까지 임시로 사용할 가구조차도 선별해 사용했다.

부모가 칸을 처음 만났을 때 세 살이었던 니나는 자라면서 자신의 관심사가 계속 변하고 있었는데, 자기 방을 비추는 빛, 따뜻하고 안온한 느낌, 이리저리 바꾸어 쓸 수 있는 융통성이 이런 변화를 잘 받아 줬다고 기억하고 있다. 또 이 집은 자기만의 공간이 나무와 자연에 매료되는 상상력을 심어 줬다. 그녀에게 이 집은 정직한 건물, 사는 사람의 바람을 만족시켜 주는 집, 그렇지만 찾아올 사람이나 자기들이 아닌 미래에 살 또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바를 미리 생각하는 집이었다. “만일 집이 가르쳐 줄 수 있다면, 제 어린 시절의 이 집은 이렇게 나를 가르쳐 줬습니다. 루이스 칸이라는 천재를 통해서.” 딸도 부모님과 함께 지낸 이 주택에서 빛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고 사람이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남편 노먼이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인 2003년, 피셔 부부는 ‘루이스 칸과 7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루이스 칸과 보낸 7년간 우리는 참으로 훌륭한 건축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말 살기 편하고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집, 그리고 애정으로 가득 찬 각별한 친구와 함께 보낸 추억입니다. 우리는 미술관이나 모뉴먼트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우리 가족에게만 특별한 집을 짓고자 했습니다만, 이 집은 루이스 칸이 지어준 집이니 그렇게 돼서는 안 되겠지요. 건축을 공부하는 젊은이나 건축가, 역사가의 연구를 위해 앞으로 이 집이 그대로 잘 보존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건조물을 보존, 관리하는 내셔널 트러스트에 이 집을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또 이렇게 썼다. “이 주택은 우리 부부의 삶과 따로 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이 집의 아름다운 공간에 계속 놀라고 있습니다. 다른 분도 이 집에 가득 차 있는 아름다움을 우리와 함께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건축가도 작품도 훌륭하지만 건축주도 아주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 작은 주택을 두고 함께 건축을 배워 간 피셔 부부와 칸은 사보아 주택의 건축주와 르 코르뷔지에와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피셔 주택은 보편적 가치를 지닌 집이다. (문화일보 8월22일자 28면 6회 참조)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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