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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현모의 세종이 펼친 ‘진짜 정치’ 게재 일자 : 2018년 09월 12일(水)
兄 효령의 술을 일어서서 받은 세종… 틀에 박힌 예법보다 원만한 소통 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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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부부가 늦은 시간 식당에 들어섰다, 매우 허기져 보이는 그 노부부에게 식당 주인은 밥을 빨리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테이블에는 젊은 손님들이 한참 전에 와서 주문을 마친 상태다. 여러분이 식당 주인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삼성그룹의 입사 면접 때 나온 문제다. 먼저 주문한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게 식당 에티켓이지만, 허기진 노인들에게 우선 밥을 차려드리고 싶은 인정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연장자를 우선시하는 미풍도 있지 않은가. 세종도 이와 비슷한 딜레마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1423년 4월에 세종은 태평관, 즉 지금의 숭례문 근처 상공회의소 자리의 영접관으로 거동했다. 얼마 전 아버지 태종을 여윈 세종을 위로하기 위해 온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자리였다. 세종은 우선 황제가 보내온 부고문(訃告文)을 어떤 예법에 따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사신들에게 물었다.

그들이 가르쳐준 대로 예를 행하자 사신들은 “한 말씀, 한 동작이 모두 법도에 맞다(一言一動 皆合法度)”고 칭찬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참석한 종친들이 돌아가며 술을 따르는데(行酒),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 차례가 왔다. 효령대군이 왕에게 술을 따르러 왔을 때 세종은 순간 망설였다.

▲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동생이 형의 술을 앉아서 받으면 하늘이 정해준 질서, 즉 형제간의 정리를 무시한 것이 된다. 그렇다고 일어서면 군신 간의 예의가 무너진다. 국왕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그의 신하이기 때문에 일어서서 신하의 술을 받는 것은 예법에 안 맞다. 무엇보다 예법으로 트집 잡기 좋아하는 중국 사신들 앞이 아닌가. 그들은 환영 잔치에서 여성 무용가나 연주자가 나오면 공연을 그만두게 하기도 했다. ‘예연(禮宴)은 매우 고상한 것인데, 광대 나부랭이가 나와 춤추고 연주하는 건 야만스러운 짓’이라는 게 저들의 주장이었다.

세종의 선택은 형제간 의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임금이 일어서서 술잔을 받았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그날의 세종 모습 역시 중국 사신의 눈에 거슬렸던 듯하다. 연회가 파한 후 사신이 황희 정승에게 “오늘 잔치에서 효령대군이 술을 따를 때 전하께서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무엇 때문이오?”라고 물었다. 사사로운 형제간의 의리를 위해 군신 예법을 망친 것 아니냐는 힐난이었다. 황희의 대답이 중요한 순간이었다. 황희는 “군신의 분의(分義)로 볼 때 우리 전하께서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여 일단 저들의 힐난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리 전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천륜(天倫)을 중히 여기시기 때문”이라는 게 황희의 설명이었다. 그러자 사신들은 “우리 황제께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화답했다. 태자로 하여금 황제의 동생을 맞이할 때 비록 지위는 그보다 낮지만 길을 양보하여 존중하는 뜻을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600여 년을 뛰어넘는 두 가지 사례가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소통의 중요성이다. 만약 식당 주인이 인정만을 생각해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노인 부부에게 먼저 음식을 드렸다면 먼저 온 손님들을 불쾌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반대로 먼저 주문한 순서대로 음식을 제공하고, 허기진 노인들을 기다리게 했다면 어른 공경도 모르는 몰인정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황희가 천륜을 들어 세종의 술자리 매너를 설명하지 않았다면, 중국 사신들은 돌아가서 우리나라를 예법도 모르는 나라라고 비난했을 것이다. 세종이 부고문을 맞이하는 언행에 대해 사신들이 ‘법도에 꼭 맞다’고 칭찬한 것도 그들에게 먼저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에티켓이나 예의는 원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원만하게 만들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간혹 예법을 들어, 또는 국제 매너에 어긋난다고 타인을 꾸짖거나 비난하는 분들을 본다. 그분들에게 나는 그 예법이나 매너를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상대방을 존중하며 물었던 세종에게 한 수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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