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사랑을 하고, 그 새끼들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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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달팽이야! / 베르벨 오프트링 글, 야나 발치크 그림, 한윤진 옮김 / 다섯수레

달팽이와 가족이 되는 일은 우연의 결과일 때가 많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장바구니를 열고 통배추를 꺼내 씻거나 텃밭에서 저녁 밥상에 오를 쌈채소를 솎다가 달팽이와 마주친다. 작은 통을 마련해 먹이가 될 만한 채소를 넣어주면서 어떻게 지내나 잠깐씩 살펴보는 사이에 달팽이는 쑥쑥 자란다. 느리지만 선명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어서 달팽이와 동거를 시작하고 나면 우리는 늘 숨바꼭질한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처럼 잘 자라고 잘 숨는 달팽이를 좋아한다.

이 그림책은 달팽이를 좋아하는 어린이에게 권하고 싶은 자상하고 예술적인 달팽이 보고서다. 과학적 지식으로 달팽이의 구체적인 삶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달팽이가 자신의 앞날을 어떻게 준비하고 헤쳐 나가는지를 계절의 변화와 함께 회화적으로 보여준다. 달팽이를 발견하고 그와 동행하는 어린이 주인공의 눈길과 손길은 달팽이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표현된다. 그림은 우리가 현실에서 달팽이를 관찰한다면 불가능한 거리까지 접근하고 비밀 안에 감춰진 순간도 포착해서 보여준다. 꼬마 달팽이가 자라서 다른 달팽이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알을 낳는 장면을 거쳐 새끼 달팽이들이 세계를 향해 쏟아져 나오는 대목에 이르면 고요한 숭고함이 느껴진다.

책에 담긴 수많은 종류의 달팽이 중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은 달팽이는 ‘흰입술정원달팽이’다. 이 종류의 달팽이들은 주로 숲과 들판, 정원에 사는데 달팽이집의 입구가 밝은색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 밖에 달팽이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상식도 흥미롭다. 그들의 눈은 낮과 밤만 구분할 뿐 형태를 보지 못한다거나 달팽이에게는 귀가 없어서 소리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까지 하나의 존재로서 달팽이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꼼꼼한 정보가 담겨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른쪽 접지된 부분을 펼치면 마치 컴퓨터 모니터에 새로운 창이 열리는 것처럼 그림책 서사 안에서 언급하지 못한 확장된 달팽이의 한살이가 펼쳐진다.

이 책의 글을 쓴 베르벨 오프트링은 60권 이상의 어린이 교양서를 집필한 전문가다. 어린이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이 얼마나 섬세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는 그림책이다. 외서를 번역한 책이지만 국내의 달팽이 전문 연구자인 권오길 박사의 감수를 거쳐 우리 어린이들에게 과학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는 정확한 한글 명칭과 표기 원칙을 지켰다. 60쪽, 1만3500원.

김지은 어린이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