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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18년 09월 14일(金)
물·공기 사먹던 ‘미래소년 코난’… 현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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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는 SF 애니메이션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공각기동대’, ‘2020 우주의 원더키디’, ‘녹색전차 해모수’, ‘에반게리온’, ‘미래소년 코난’. 자료사진

- SF, 포스트 휴먼, 오토피아 / 안숭범 지음 / 문학수첩

韓日 애니메이션 10편 통해
인류 미래의 희망·불안 조명

‘코난’ 공동체 자생 위해 투쟁
‘공각기동대’의 인간됨 고민
‘원더키디’ 테크노포비아 다뤄

“‘미리 온 미래’로부터 배워야”


그땐 21세기가 오나 싶었다. 서기의 앞자리가 1에서 2로 바뀐다는 것은, 마냥 20세기 후반을 살면서도 체감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한창 ‘미래소년 코난’에 빠져 있었음에도 ‘만화니까 그런 거야’라고 치부하던 시절이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이를테면 물을 사 먹어야 하고, 공기도 사서 마셔야 하는 일들은 아예 머릿속에 없었다. 하지만 어릴 적 보았던 만화들이, 철들면서 애정했던 영화들이 이제 하나둘 우리 곁에서 현실이 됐다. 격변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시간들이 체화(體化), 아니 육화(肉化)되기도 전에, 우리는 맨몸으로 현실을 견뎌내고 있다.

한국과 일본 애니메이션 10편을 통해 “우리 안에 온 미래”를 살펴본 ‘SF, 포스트휴먼, 오토피아’는 ‘일단’ 추억을 돋게 하는 책이어서 반갑다. ‘코난’을 비롯해 ‘공각기동대’ ‘아키라’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 10편의 작품이 어려서 혹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고 듣고 즐긴 내용들이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추억팔이 정도로 여길 책은 절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일개 만화라고만 치부되던) 그 작품들이 실은 “서로 다른 미래를 열망하고, 각기 다른 미래상으로부터 불안을 경험”하는 하나의 매개가 돼 왔기 때문이다. ‘코난’과 ‘기동전사 건담’이 그랬고, ‘공각기동대’는 두말하면 입만 아프다. 안숭범 경희대 국문과 교수는 SF가 “유연성과 확장 가능성이 매우 큰 양식”이며 그 철학적 테마는 “신화적 상상력과 깊이 상관된다”고 밝힌다. 두 가지 가능성을 조합한 SF, 작게는 이 책에 언급한 애니메이션들은 저자의 말처럼 “사실상 인류와 세계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조명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뜬금없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미래소년 코난’에 내가 열광한 이유는 외견상 보이는 ‘코난’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발가락 힘만으로 위험천만한 난간을 버틸 힘, 작살창 하나로 무슨 일이든 해결하는 초인적인 모습, 이 모든 것을 10대의 나는 동경했다. 10대라면 누구라도 동경했을, 초인이 되고 싶었던 소년이 단지 나뿐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코난을 이 작은 세계에 가둬서는 안 된다. 코난이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홀로 남은 섬’을 떠나 동료들을 모은 후 새로운 지구를 만들라는 것 그리고 새롭게 재편된 공동체 속에서 동료들을 위해 살아가라”는 임무는 한 초인적 소년의 임무만은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가 무엇을 염두에 두었든, ‘미래소년 코난’은 “인류가 범했던 과오를 반복 재생산하고 있는 섬 ‘인더스트리아’”라는 미래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코난의 임무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공동체의 자생력 확보를 위해 내부 구성원과 자연환경에 대해 책임성과 자율성의 조화를 연습”하면 그제야 새로운 섬 ‘하이하바’에서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녹색전차 해모수’와 함께 언급된 한국 애니메이션 ‘2020 우주의 원더키디’는 어떤가. 1989년 “한국에서 제작한 최초의 SF·메카닉 TV 시리즈물”인 ‘2020 우주의 원더키디’는 요즘 화두인 테크노포비아와 테크노필리아의 경합(?)을 정면으로 다룬다. 흥미로운 것은 테크노포비아, 즉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 통제 불능의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SF 서사물의 가장 보편적인 불안과의 일치”가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시점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기술 발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가, 철학이, 여전히 부재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공각기동대’는 “트랜스휴먼, 포스트휴먼 사회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철학적 논점을 극단까지 밀고 가는”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은 초고도 네트워크망에 완전히 결속된, 트랜스휴먼의 전형이다. 그러나 그녀는 “타자와 나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지경”인 트랜스휴먼이면서 “인간과의 신체적 차이에 연연하며 ‘인간됨’”을 고민하는 “주체적 자기”를 찾는다. 저자는 이런 쿠사나기를 장폴 사르트르의 “현재를 초월하여 미래로 자신을 내던지는 실존 방식”을 실천한 존재로 묘사한다. 스스로의 문제의식에 묶여 있던 쿠사나기는 이 대목에서 “새로운 오토피아의 모델을 제안하는 주체”로 승격된다.

1970년대 후반 ‘미래소년 코난’ ‘기동전사 건담’부터, 비교적 최근인 2014년 ‘테라포마스’까지 10편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본 미래 세계는 암울하다면 암울하다. 하지만 그 미래를 희망 섞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저자의 말마따나 이 작품들을 통해 “미리 온 미래‘들’”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작품이 우리 미래를 모두 보여준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리라는 법도 없다. 반면교사로 삼을 것인가, 한나절 혹은 며칠을 보낼 여흥거리로 삼을 것인가. 이 작은 선택에서부터 우리의 미래는 바뀔지도 모른다. 324쪽, 1만4000원.

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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