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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문화] Fifty+ 게재 일자 : 2018년 09월 14일(金)
“늘 ‘10년 뒤의 나’ 불안… 지금은 풀 뽑다 쉬면 그게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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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겨울나기와 내년 봄을 준비 중인 임지수 씨는 뽑아도 뽑아도 자라는 풀을 뽑고, 수선화도 심었다. 그는 언젠가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 정원사·농부 12년 ‘한국의 타샤 튜더’ 임지수 씨

40대 중반쯤 ‘50세 이후’ 고민
출장길 새벽기차 밖 풍경 보며
소박한 삶에 대한 그리움 느껴

전국 돌다 전북 장수에 땅 구해
반대했던 남편, 이젠 의사 존중

첫 5년간 직장·장수 생활 병행
‘직원 100명 회사’ 마무리 지어

山羊·닭 ·강아지가 ‘한 식구’
수익 위해 유실·조경수 심어
종일 일하다 멍 때리고 숙면

대단한 일 아니지만 ‘행복감’
하얀 백지가 내 앞 있는 느낌

‘유럽서 포도 키우기’새 도전
가능성 타진하러 곧 떠날 것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100명 가까운 직원을 둔 통신회사 아웃소싱 회사를 운영하다 전북 장수 산속으로 혼자 들어가 집을 짓고, 나무를 키우고, 야생의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는 임지수(58) 씨. 전북 장수 고지 500m, 3만 평에 자리 잡은 그의 농장 ‘farm 나무와 풀’에는 나무가 자라고 계절에 따라 꽃이 피고 진다. 1만 평쯤인 정원은 꽃씨가 바람에 날아와 저절로 자란 것 같이 자연스럽다.

40대에 들어서면서 나이 50엔 엄마로, 부인으로, CEO로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살겠다고 막연히 꿈꾸던 그는 2007년 마흔일곱에 땅을 사고, 2012년 쉰둘에 완전히 산속 정원으로 내려왔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지 12년째. 그는 풀을 키우며 메마른 땅을 살려냈고, 유실수와 정원수를 키워 농장의 자급자족을 이뤘다. 반대하던 가족들도 이젠 각자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됐다. 그는 자신을 ‘정원사이자 농부’라고 하고, 사람들은 그를 ‘한국의 타샤 튜더’라고 부른다. 그를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최근 10여 년의 정원생활을 정리해 내놓은 책 ‘엄마도 꿈꿀 권리가 있다’(터치아트) 독자와의 만남 행사 때문에 올라온 길이었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시작됐나.

“남들 눈엔 서울에서 충분히 행복해 보였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고 싶었다. 일은 좋았다. 100명 가까운 직원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일도 보람 있었다. 하지만 마흔다섯 즈음부터 50세 이후엔 그만두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주 멋있는 차를 사서, 여성 사모님들을 멤버십 회원으로 하는 개인택시를 해 볼까, 괜찮은 여성 CEO 비서로 들어갈까 여러 생각을 했다. 파트너로 잘 서포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제의도 받았다. 하지만 새 일에 발을 디디면 최소 10년이다. 그냥 은퇴한 뒤 하려는 일을 지금 하자. 일단 하고 그다음엔 그다음 하고 싶은 것을 하자라고 생각했다.”

그가 결정적으로 결심을 한 날은 2005년 광주로 내려가던 새벽 출장길에서였다. 머리도 제대로 못 말리고 서둘러 나온 그는 달리는 기차 창밖으로 산골 마을 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그곳에서 아침을 맞는 이들은 소박한 삶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는 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좀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 뒤 그는 어린 시절, 밤나무 농장을 했던 외할아버지 산 농장을 오르내리며 행복했던 기억, 시간만 나면 산에 오르며 산에서 하루 종일 살면 좋겠다는 바람을 좇아 산에서 나무와 꽃을 키우는 새로운 삶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500m 이상 고도, 겨울에도 종일 볕이 드는, 평당 1만 원대’라는 기준을 정해놓고 주말이면 땅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결국 전북 장수에서 지금의 땅을 만났다.

―혼자 내려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스물세 살에 멋모르고 결혼해 연년생 남매를 낳고 키웠다. 남편은 내가 자연생활을 하고 싶다면 서울 근교에 작은 집을 짓고 오가길 바랐다. 장수 산속에 땅을 샀다고 하자 불같이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반대가 심할수록 오기가 생겼다. 스무 살 넘은 아이들이 엄마가 없으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도 버렸다.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니까 주변도 편안해졌다.” 그는 쿨하게 ‘졸혼’이라고 했다. “한의사인 남편은 천직인 자기 일을 하며 도시에서 살고 나는 바라던 정원 일을 하며 산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가족이 함께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최우선으로 달려간다. 우리처럼 각자가 원하는 삶이 뚜렷하다면 가족의 울타리를 좀 더 넓게 풀어 주고 서로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것도 중년 이후의 행복한 동행을 위한 선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정원생활도 결국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다. 그래서 돈을 모았다. 시작할 때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2억 원 정도였다. 하지만 돈만으로는 할 수 없다. 지금은 자신이 생겨 돈 없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땅을 사자마자 내려오지 못하고 5년간 서울 직장 생활과 장수 생활을 병행했다. 직원들에 대한 책임도 있어 천천히 정리하며 직원들이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그는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부터 사과나무 350주와 200주의 조경수 묘목을 심었다. 사과는 매년 15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안겼고, 지금은 나무값만 1억∼2억 원에 이른다. 그는 이 모든 것이 10여 년 동안 꾸준히 만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엔 겹벚나무 묘목, 블루베리, 아로니아, 살구나무를 심었고, 올봄에는 산수유, 블랙커런트 묘목 100주를 심었다.

―혼자 힘들지 않나.

“나무를 심거나 집을 지을 땐, 동네 어른들이 도와주기도 하고 일꾼을 부르기도 하는데, 내 손이 가야 한다. 인건비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동물들에게 밥을 주며 일을 시작해 10시쯤 일을 멈추고, 해가 좀 잦아드는 3시부터 다시 시작해 7시 정도까지 일한다. 잡초를 뽑는 데만 하루가 간다.” 그는 산양 네 마리, 닭 스물일곱 마리, 강아지 네 마리를 키운다.

―행복한지.

“행복하다. 정원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대단한 것을 보고, 대단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일하다 쉬고 있으면 행복을 느낀다. 하얀 백지 하나가 내 앞에 와 있는 것 같다. 특별히 욕심 나는 일도 없고, 갖고 싶은 것도 없이, 여기 이렇게만 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다. 서울에선 잠을 잘 못 자서 눈이 퀭했는데 여기에선 멍때리기도 하고 잠도 깊이 잔다.”

앞으로 정원 계획을 묻자 유럽에서 포도밭을 해보고 싶다는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책을 통해 지난 10년간의 세월을 묶어냈다. 농장을 시작할 때엔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웠는데, 나이가 드니 이제 3년 단위로 계획을 세운다. 좀 있으면 손자·손녀들과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주고 싶다. 그때까지 휴가 같은 3년간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싶다. 젊었을 때부터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농장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으니 믿을 만한 분께 맡겨 놓고 유럽에 가서 포도밭을 임대해 포도를 키워보고 싶다.” 젊었을 땐, 항상 10년 후가 불안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보는 용기를 이야기하는 그는 유럽 포도밭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곧 유럽행 비행기를 탈 생각이라고 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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