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220억원을 허투루 쓰지 않은 역작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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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5000명으로 20만 명에 맞선다. 산술적으로 군사 1명이 40명씩 맡아야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컴퓨터 게임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전투다. 하지만 이는 고구려 시대 안시성을 둘러싸고 벌어진 실제 싸움이었다. 한민족의 ‘이긴 역사’다.

그렇다면 이 영화 같은 이야기가 왜 그동안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안시성주 양만춘은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인물이다. 야사에 잠시 등장한 정도다. 그래서 사료가 부족했다.

게다가 안시성 싸움은 공성전이다. 성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대표적 전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반지의 제왕’이다. 대중의 눈높이가 거기에 머물러 있다. 그것을 뛰어넘는 영상을 만든다는 것은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을 법하다. 19일 개봉되는 영화 ‘안시성’(김광식 감독)은 이런 핸디캡을 갖고 시작한 영화다.

결과적으로 ‘안시성’은 이런 역경 위에 탄탄히 세운 꽤 괜찮은 수작이다. 안시성을 둘러싼 전투는 규모감이 느껴지고 스펙터클하다. 특히 토산(土山)을 쌓은 당나라 대군에 맞선 안시성민들의 싸움은 압권이다. 이 영화의 총 제작비는 220억 원이다. ‘안시성’을 보고 있노라면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알 수 있다. 표 값이 아깝지 않은 구경이다.

‘안시성’을 채우는 캐릭터들도 매력적이다. 주인공 양만춘 역을 맡은 배우 조인성은 ‘장군’ 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 타입을 과감히 부순다. 일반적으로 ‘장군감’이라 할 만한 이들의 외모와 목소리는 뻔하다. 하지만 그들이 살던 시대, 장수들의 나이는 대다수 30∼40대였다는 것을 고려할 때 ‘안시성’에서 몸에 힘을 뺀 채 대화를 나누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2시간의 러닝타임은 ‘안시성’이 제시하는 새로운 사극의 느낌으로 관객들을 설득시키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조인성을 비롯해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들을 설득시키기에 부족하지 않다. 조인성은 권위적이지 않고, 안시성민들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는 새로운 장군상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배성우는 남다른 성량으로 장면 장면을 압도하고, 사극 연기에 도전한 ‘젊은 피’ 남주혁의 연기 또한 안정적이다.

‘안시성’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안시성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이름값을 충분히 한다. 한국에서 공성전을 다룬 꽤 괜찮은 영화가 탄생했다. 19일 개봉. 135분.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