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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美國에서 본 한반도 게재 일자 : 2018년 09월 19일(水)
20년 전 페리 프로세스 失敗의 데자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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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2000년 10월 조명록 북한 차수를 만났지만, 미·북 관계는 진전되지 않았다. 자료사진
신기욱 스탠퍼드大 교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北 지도부 판단 머뭇거려 失機
美 중간선거 뒤 상황 예측불허
문·김·트럼프 利害 달라질 수도


14년 전의 일이다. 200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 고위 관료들이 스탠퍼드대에 들렀다. 후일 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와 베트남 대사를 역임한 김명길을 단장으로 한 관료들이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의 존 케리 상원의원이 맞붙은 대선의 풍향계를 탐색하러 왔던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한창일 때라 북한이 미 대선에 주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김 단장에게 물었다. “왜 북한은 페리 프로세스의 결과인 미국의 대북 정책 권고안에 대해 1년이나 뜸을 들였는가? 바로 회답하고 미국과 협상을 벌였다면 아마 지금쯤 미·북 국교정상화와 함께 많은 진전이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다”고. 그 자리에는 페리 프로세스의 주역이자 동료 교수인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도 함께 있었다. 김 단장은 “위에서 결정한 일이기 때문에 내가 뭐라고 답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며 얼버무렸다.

페리 프로세스가 시작된 1998년, 그해 8월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고 금창리 지하 시설에 대한 의혹이 고조되는 등 미·북 갈등이 고조되자 빌 클린턴 대통령은 페리 전 국방장관을 조정관에 임명해 전반적인 대북정책을 검토하도록 했다. 페리는 임동원 통일부 장관, 가토 료조(加藤良三) 일본 외무성 심의관과 협의를 거친 후 1999년 5월 평양에서 차수인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등과 만나 현안을 논의하고 10월에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대북정책 보고서를 작성했다. 페리 보고서는 “우리가 원하는 북한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봐야 한다”고 전제한 후, 북한이 핵과 장거리미사일을 제거하면 경제제재 완화와 미·북 관계 정상화를 비롯해 “북한에 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인 단계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또 페리의 방북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올가을에 북한의 고위관료(senior DPRK official)가 워싱턴을 방문해 양국의 관계개선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이 권고안은 미 행정부와 의회뿐 아니라 북한에도 전달돼 평양의 긍정적 반응을 기대케 했다.

그러나 묵묵부답으로 1년을 보낸 북한은 2000년 10월에야 조명록 차수를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에 보냈고 “과거의 적대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미·북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했다. 이후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은 클린턴 대통령을 초청하는 등 관계가 급진전하는 듯했지만, 곧이어 등장한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강경책을 고수해 그동안의 미·북 협상은 물거품이 됐다. 조명록 특사가 1999년 가을 워싱턴을 방문했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8년 만에 절호의 찬스가 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진정 ‘미국과의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경제발전을 원한다면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되며,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할 수 있는 것을 천운으로 생각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에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더 적극적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조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과 회담을 하는 등 대북정책을 자신의 최고 업적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김 위원장이 지금과 같은 조합의 한·미 파트너를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다.

40여 일 앞으로 다가온 11월 중간선거까지 비핵화에 진전이 없으면 선거 후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강경책으로 선회할 수 있다. 최근 밥 우드워드가 쓴 ‘공포(FEAR)’에도 언급됐듯이 지난해 미국은 대북 군사공격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필자가 지난해 4월 한반도 위기설이 나돌 때 하와이 태평양사령부를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당시 사령관이 현 주한 미국대사인 해리 해리스 제독이었다.

평양을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북한의 환대에 취하거나 어설픈 중재역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절박한 심정으로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넘어서 보다 진전된 행동으로 옮길 것을 설득해야 했는데 평양선언은 그러한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북한의 비핵화 없이는 ‘한반도 신경제구상’도 실현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보니 정치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더구나 중간선거에서 예상대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면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그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동안 어렵게 이어져 온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도 사라질지 모른다. 이런 미국 내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고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머뭇거리다 타이밍을 놓쳤던 경험을 상기시켜 서울을 방문하기 전 김 위원장이 과감한 결단을 해야한다고 촉구해야 한다.

우연인지 몰라도 페리 프로세스가 진행되던 1999년의 김정일이나 현재의 김정은 모두 집권 6년 차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아버지가 놓친 기회를 또다시 놓쳐서는 안되며 기로에 서 있는 한반도 평화의 미래는 평양에서 마주하는 두 지도자의 어깨에 달려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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