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시장경제 망칠 ‘韓銀독립 훼손’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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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재정학

한국은행이 다시 뉴스의 한가운데 섰다.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는 기준금리에 대한 금융계의 관심이 아니라, 기준금리를 누가 결정하는지에 대한 정치적 논쟁 때문이다. 자산시장 불안정의 책임을 전 행정부에 넘기려는 국회의원의 유도 질문에 넘어간 총리의 실언으로, 평소 중앙은행으로서 한국은행의 독립성에 대해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투자자들은 역시 그렇지 하는 반응이다.

지난번 대통령 경제보좌관의 발언 이후 총리의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하는 발언은, 거시경제 제도와 경제 거버넌스에 대해 국제 금융시장에서 완전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상당히 뼈아픈 실수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신흥국 시장(emerging market)에서 안정적인 선진 금융시장으로 편입되기에 또 하나의 장애물이 생기고 말았다.

주지하듯이 중앙은행은 금융의 최종 대부자로서 화폐량을 조절해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이끄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경제적 성과가 정치적 지지로 이어지는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 편향을 막고 안정적인 성장을 유도하는 역할을 위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신흥국 경제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물가와 화폐량을 정하는 금융정책의 기반이 될 뿐 아니라, 금융위기의 방지와 관리를 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안정적인 거시경제 제도가 자리잡지 못한 상태에서 중앙은행이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해 금융감독을 경시하여 경제 질서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게 된 사례도 많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요구해 왔으며,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때인 1997년 중앙은행 독립을 보장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이 이뤄져 금융통화위원회의 의장직이 재정경제부 장관에서 한국은행 총재로 바뀌었고, 재정경제부 장관의 업무 검사권이 폐지됐다.

금융 위기를 기화로 어렵게 제도화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제대로 안정화되지 못하고 이를 훼손하는 듯한 발언이 공식 석상에서 반복해 나오는 것은 유감이다. 혹, 지난 행정부에서 그런 관행이 있어 왔다고 생각하고 자신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은연중 생각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는 자신들이 표방한 국정 방향과 모순될 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민의 기대와도 어긋난 생각일 것이다.

당면한 과제 앞에서 정부는 집권화된 경제권력을 가지고 단번에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판단을 하고 그런 방식의 시장 개입을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가 쉽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복잡한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발전된 경제 체제에선 오히려 더 큰 변동성만 일으키고 시스템의 위기를 일으킬 수 있는 결함을 발생시키게 될 뿐이다.

복잡한 경제 시스템에서 독자적 기능과 권한을 가진 의사결정체가 다수 존재하는 분권화된 시스템이 필요하다. 각 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분명히 보장되는 시스템이어야 기관들 간의 협업과 융합의 시너지가 작동할 수 있다. 투명성과 민주적 책임성이 확보된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이러한 시스템의 핵심 요소다. 중앙은행이 확고한 독립성을 확보할 때 재정정책 당국과 중앙은행은 각자의 논리에 충실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고, 집단지성에 의한 최적의 정책 조합을 찾을 수 있다. 괜한 오해를 일으킬 훈수는 삼가고 중앙은행과 금융통화위원회의 민주적 책임성과 투명성 향상을 위한 제도적 개선을 위해 지혜를 모으는 것이 정치권의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