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엔 이 책과 함께>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또 하나의 가족 ‘반려로봇’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 김연아 기자 yuna@

가족에 대한 생각이 변하고 가족의 형태, 가족의 관습이 급속히 바뀌어 가지만 그래도 추석 명절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랑보다는 가족 때문에 받는 상처에 대해 더 많은 분석이 이뤄지는 시대다. 하지만 한 개인 그 생의 출발점이 가족이고, 개개인의 시간이 서로서로 켜켜이 쌓여 싸우고 다투면서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달려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안는 것이 가족이다. 우리 시대 가족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가족을 주제로 추석 책 특집을 마련했다. SF를 통해 미래의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살펴보며 두 편의 소설을 통해 ‘가족은 무엇일까’를 탐색했다. 가족 문제의 핵심인 남녀의 갈등, 세대의 갈등은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들도 골랐고, 가족들의 고민을 그림책으로 처방하는 지면도 꾸몄다. 추석, 가족과 행복하시길.

인간과 좀 더 넓게 잡아 반려동물로 이뤄진 가족의 개념이 최근 들어 바뀔 조짐이 보인다. 바로 ‘반려로봇’의 등장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독거노인을 위한 말동무 로봇이 나온 지 꽤 됐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대화형 인공지능(AI) 스피커들은 아직 아쉬운 수준이지만, 기술 발전을 감안하면 늦어도 금세기 중반이 되기 전에 반려로봇은 가족의 새로운 구성원으로서 입지를 굳힐 것이다.

반려로봇의 핵심은 인간과의 상호 소통이다. 특히 반려동물과는 달리 인간의 언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절대적인 장점이 있다. 이러한 AI에다 간단한 집안일들을 도울 수 있는 기계 몸체가 결합되면 우리에게 익숙한 로봇이 되는데, 이러한 AI 로봇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먼저 사회복지 서비스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SF는 이미 오래전부터 AI와 로봇이 가족의 구성원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며, 다양한 전망을 다듬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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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로봇’(아이작 아시모프 지음／우리교육)

가족의 일원이 된 로봇을 가장 잘 묘사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아이작 아시모프다. ‘아이, 로봇’은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상상을 담은 작품집으로 아시모프가 제창한 ‘로봇공학의 3원칙’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로봇공학의 3원칙이란 일종의 로봇 윤리강령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로봇은 인간을 위험에 빠트려서는 안 된다. 둘째, 로봇은 인간에게 절대복종해야 한다. 셋째, 로봇은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 ‘아이, 로봇’에는 한 가족이었다가 떨어지게 된 로봇이 재결합하는 과정에서 로봇공학의 원칙이 어떤 우여곡절을 낳는지 등 여러 가지 흥미로운 상황을 묘사한 여러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원칙들은 실제로 작년 초에 유럽의회에서 AI 로봇을 ‘법인격’으로 인정할 것인지 검토하는 과정에서 주요 고려 사항이 됐다. 아시모프의 로봇 이야기들은 반려로봇의 미래와 관련해서 매우 현실적인 사회 윤리나 철학을 담고 있기에 영화로도 몇 차례 제작됐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끈 것이 ‘바이센테니얼 맨’이다.

주인공 로봇이 한 가정에 들어간 뒤 몇 세대에 걸쳐 가족으로서 인연을 이어 가는 이야기다. 처음에 로봇은 충실한 하인이었지만 주인의 어린 딸과 깊은 우정을 맺게 되고, 나중에 그 딸이 장성해 아이를 낳자 다시 그 아이와 끈끈한 관계가 된다.

◇‘기계장치의 사랑’(고다 요시이에 지음/세미콜론)

로봇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익숙한 캐릭터지만, 대개는 상투적으로 의인화돼 묘사되기 십상이다. 만화 ‘기계장치의 사랑’은 AI 로봇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살리면서 우리 인간들에게 사랑이나 양심, 우정 등을 깊이 되새기게 하는 흔치 않은 작품집이다. 로봇이 인간의 든든한 가족이자 친구이면서 또한 충실한 하인이자 집사로 지내는 사회. 이런 세상에서 인간 가족은 어떤 변화를 겪을까?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는 대신 로봇을 입양하면서 싫증이 날 때마다 남자아이 로봇에서 여자아이 로봇으로 거리낌 없이 바꾸게 될까? 인간과 맺은 약속을 끝까지 기억하고 지키려 하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로봇들에게 우리는 부끄러운 존재가 되진 않을까? 인간은 로봇 덕분에 인간으로서, 가족으로서 더 성숙해지는 계기를 맞이하게 될까? 고다 요시이에(業田良家)는 앞서 ‘자학의 시’라는 작품을 통해 이름을 알렸는데, 4컷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장편보다도 더 가슴 절절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가다. ‘기계장치의 사랑’에도 그러한 솜씨가 여지없이 발휘돼 로봇을 통해 인간과 가족의 의미를 새삼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일본에서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한, 숨어 있는 명작이다.

◇‘관내분실’(김초엽 외 지음/허블)

구성원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그것이 꼭 가족의 해체를 의미하진 않는 세상이 올까? ‘관내분실’은 그런 상상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한 사람의 살아생전 모든 기록을 저장해 가상 인격으로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지면, 이제 세상에 없는 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인 모습은 물론 말투나 생각, 사고 방식까지도 그대로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관내분실’에는 세상을 떠난 이들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도서관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죽은 엄마를 찾아 도서관으로 가지만, 그곳에서 뜻밖의 상황에 직면한다. 가족이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모를 수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색다른 SF적 접근으로 고찰한 이야기다.

한편으로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미래에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어느 정도 상쇄시킬 수 있는 여지도 생각하게 한다.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인 이 책에는 이 밖에도 인간이 차마 짊어지기 힘든 부담을 떠맡는 AI 간병로봇 등 미래의 다양한 시나리오가 실려 있다.

그리고 AI 로봇이 가족의 구성원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도 빼놓을 수 없다. 식물인간이 된 아들 대신 로봇 소년을 입양한 가족의 이야기다. 아들이 회복돼 돌아오자 부모는 결국 로봇 소년을 파양시켜 버리는데, 그 과정이 요즘 반려동물을 유기해 버리는 인간들의 모습과 정확히 겹쳐진다. 인간에게 버림받은 로봇들은 인간 사냥꾼들에게 쫓겨 다니며 그들만의 가련한 운명을 공유한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Her)’ 역시 새로운 가족으로서 AI의 가능성을 잘 묘사한 영화이다. 주인공은 홀로 사는 남성인데, 여성 목소리를 지닌 AI와 사랑에 빠진다. 이 AI는 인간 사회는 물론이고 세계와 우주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 학습하는 과정을 계속하더니 어느 순간 더 고차원적인 존재로 거듭나기로 결정하고 남성의 곁을 떠난다. 인간으로 치면 연인이나 부부간의 사별 등에 해당될 가슴 아픈 이별 과정을 절절하게 그려서 SF로서는 무척 감상적인 경지를 이끌어낸 수작이다.

박상준 서울 SF 아카이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