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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18년 09월 27일(木)
北 가라오케서 ‘발견’한 노래… 적어도 그날은 통일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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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아침이슬’

노래의 일생을 들추다 보면 드라마 소재, 혹은 상투적인 전개 방법이 간혹 눈에 들어온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노래가 있는가 하면 불과 몇 주 만의 ‘시한부 생명’도 수두룩하다. 제목조차 가물가물한 ‘기억상실’ 노래도 많고, 시간을 넘나들며 생명력을 뿜어내는 ‘타임슬립’ 노래도 있다. 사형선고(금지곡 지정) 등 수난을 겪다가 부활한 노래도 있는 걸 보면 대중가요에도 운명이란 게 존재하는 모양이다. 모름지기 오래 멀리 가는 것들에는 고유의 힘과 스토리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노래가 소회를 불러일으킨다. 바로 ‘아침이슬’이다.

국어교사로 재직할 때 대중가요를 지문으로 자주 활용했다. 비유법을 가르칠 때 이 노래가 유용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김민기의 ‘아침이슬’ 중). 원관념과 보조관념으로 ‘설움’과 ‘이슬’을 고른 후 어떤 면에서 이 둘이 유사한지를 발표하도록 했다. “이슬은 눈물을 닮았잖아요.” “설움은 오래가지 않으니까요.” 별별 대답이 등장해 교실이 백화원(온갖 꽃들이 만발한 정원)으로 바뀌고, 마지막에 합창까지 곁들이면 ‘임도 보고 뽕도 딴’ 즐거운 수업은 완성도 높게 마무리되곤 했다.

청소년 시절에 노래 가사를 모조리 외울 정도로 빠져 있던 나의 ‘우상’ 김민기(사진)를 방송사 복도에서 우연히 보게 된 건 일종의 행운이었다. ‘PD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를 건넨 후 내 입에서 불쑥 나온 말이 “저는 김민기를 연구하고 있어요”다. 놀라던 그의 반응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부탁인데 제발 그러지 마세요.” 그러나 그 후 지금까지 그를 ‘연구 중’이다. 2004년에 ‘김민기’라는 제목으로 거의 6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이 나왔는데 나는 두 명의 대담자 중 하나로 참여했다. 이 인연이 고리가 된 셈이다.

▲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1999년 12월 봉화예술극장에서 열린 남북합동공연(민족통일음악회)을 연출하러 평양을 두 번 다녀왔다. 11월 사전답사 때 저녁 식사 후 북측 사람들과 창광화면반주음악장(가라오케)이란 곳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노래가사집에서 ‘아침이슬’을 발견한 것이다. “이 노래가 언제 ‘월북’을 했지?” 반가운 마음에 번호를 눌렀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목이 터져라 부른 합창으로 적어도 그날 밤은 통일이 이뤄졌다.

김민기는 천생 수줍은 사람이다. 방송출연을 거의 안 한다. 보나 마나 ‘아침이슬’ 얘기를 꺼낼 게 뻔해서다. 책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내가 만든 그 물건과 나와의 관계는 세상에 나온 즉시 끝난 상태가 된단 말이야. 그걸 계속 끌어안고 간다는 건 도저히 용납이 안 돼. 나한테는 퇴물이야.” 그에겐 ‘퇴물’일 수 있지만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그의 노래는 영감을 주는 ‘퇴비’였음이 분명하다.

김민기는 현역이다. 가수, 작곡가가 아니라 연출가로 늘 무대 뒤편에 서 있다. 이번에 ‘지하철 1호선’의 재개를 알리기 위해 모처럼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침이슬’ 탄생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처음에) 가사를 ‘그의 시련일지라’라고 써놨는데 거기서 음악이 더 진행이 안 되더라고요. (중략) 그런데 (그의 시련을) 나의 시련으로 바꾸니까 금방 다 풀리더라고요.” 3인칭 관찰자에서 1인칭 주인공으로 시점을 바꾸니까 노래가 살아나더라는 고백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노래가 무덤으로 가지 않고 광야로, 광장으로 번지게 된 이유를 나는 알았다.

사회자가 묻는다. “‘아침이슬’을 빼놓은 김민기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쑥스러운 표정이 여전하다. “그냥 함께, 같이 살아가는 늙은이죠, 뭐”. 화면의 김민기는 다소 늙었지만 내면의 김민기는 결코 낡지 않았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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