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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8년 09월 27일(木)
‘만년필’ 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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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과 관련, 지난 24일 뉴욕에서는 통상 책임자들의 개정안 서명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의 공동성명 발표가 있었다. 공동성명에도 양 정상은 직접 서명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 펜을 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정상의 서명 때 고급 만년필로 서명하고 상대국 정상에게 선물하는 관례도 있는 만큼 당연히 만년필일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펜은 시중에서 2달러에 판매하는 일반 유성 펜이었다. 이를 두고 외교적 결례 논란이 일었다.

앞서 문 대통령도 평양 정상회담 때 공동선언에 서명하면서 시중에서 800원이면 살 수 있는 ‘네임펜’으로 서명했으니, 따질 입장도 못 된다. 상대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동생 김여정 부부장이 준 ‘몽블랑 149’ 만년필로 서명했다.

만년필은 1884년 뉴욕의 보험 외판원인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이 발명한 이후 중요한 국제협정 서명에 쓰였다. 1898년 미국과 스페인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한 뒤 파리조약 서명식 당시 2위 업체였던 파커 만년필이 1위 워터맨을 제치고 첫 서명 때 사용됐다. 1904년 러·일전쟁 후 포츠머스 강화조약이 체결될 때는 워터맨이 채택됐다. 제1차 세계대전 강화조약 때도 사용됐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파커가 ‘파커 51’이라는 제품으로 명성을 떨치면서 이 제품이 서명에 사용됐다. 1953년 6·25전쟁 정전협정 때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장군이 사용한 만년필이 바로 이 제품이다.

후발주자인 독일의 몽블랑은 1991년 독일 통일 서명 때 몽블랑 149 제품이 쓰이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스위스 유학생활을 했던 김 위원장은 이 제품의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그룹 고 이병철 회장이 워터맨 애호가로 서명 때 사용했고, 당시 이 회장이 갖고 있었던 만년필은 250만 원 상당인 것으로 알려졌다.

볼펜의 등장, 디지털 기기 사용 증가로 사라질 것으로 보였던 만년필이 복고풍을 타고 판매가 늘고 있다.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 따르면 전년 대비 19배나 많아졌다고 한다. 편리하고 실용적인 것에 싫증 난 사람들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만년필의 필기감을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지우기 쉽게 연필로 쓰라는 노래가 있지만, 그래도 역사에 남을 중요 문서는 만년필로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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