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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8년 10월 02일(火)
日 전통미감 ‘우키요에’… 서양 근대미술 지형까지 흔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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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반 고흐, ‘일본풍:빗속의 다리’, 캔버스에 유채, 73×54cm, 1887년. 반 고흐 미술관
▲  우타가와 히로시게 ‘아타케 부근 큰 다리 위로 갑자기 쏟아지는 비’ 다색목판화, 35.5×24.5cm, 1857년. 브루클린미술관

■ 전준엽이 만난 美感의 세계 - ② 자포니즘 미학

12세기의 이야기 그림 ‘에마키’
17세기 풍속화 ‘우키요에’ 영향
호쿠사이 ‘후가쿠 36경’대표작
만화·애니 强國 발전한 원동력

19세기에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인상파 화풍에 커다란 영향 줘
고흐, 400여점 가까이 수집해
작업실에 걸어두고 모사하기도

日 1980년대 서양미술 수집 붐
고흐 등 인상파 작품 특히 애호


문화가 경제를 이끄는 시대다. 자동차 수천 대를 만들어 파는 것보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더 높은 수익을 올리는 시대가 됐다. 금세기 문화 전쟁 대열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보여주는 나라는 일본이다. 지금 세계 각국은 일본적인 문화 취향을 ‘세련되고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장기 침체에 빠져 있던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자포니즘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한차례 불었다. 유럽인들은 일본 문화의 이국적 장식성에 매료됐다. 당시 자포니즘을 이끈 것은 도자기와 우키요에(浮世繪)였다. 150여 년이 지나 다시 불고 있는 자포니즘은 국지적 열풍이 아니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태풍급이다. 애니메이션, 패션, 인테리어 등 시각문화에서부터 음식, 여행 등 일상 소비문화 그리고 문학, 종교 등 정신문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그런데 자포니즘의 주 동력원이 일본 전통 정서에 기반을 둔 시각문화라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12세기부터 고대 소설을 두루마리식으로 그리는 이야기 그림(에마키·繪卷)이 나타났고, 이런 전통이 17세기 우키요에와 이후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세계적인 만화 강국을 일궜다.

특히 우키요에는 일본 전통 미감을 바탕으로 한 대표적 산물이다. 뛰어난 독창성으로 서양 근대미술 지형을 바꾸는 데도 많은 영향을 줬다. 뜬구름 같은 세상의 일을 담은 그림이라는 뜻을 지닌 우키요에는 일본 전통 정서를 근대적으로 풀어낸 일종의 풍속화다. 상인 중심의 도시 문화와 세속성을 담았는데, 에도(江戶)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형식이었다. 에도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정권을 잡고, 에도(현재 도쿄·東京)로 천도해 통치하기 시작한 1603년부터 메이지(明治)시대가 시작되는 1867년까지를 말한다. 그러면 왜 에도시대에 근대 감각의 우키요에가 나타났을까.

천하통일을 이룬 이에야스였지만 지방 호족들의 도전이 늘 불안했다. 그는 이를 견제할 묘책을 생각해냈다. 지방 통치권자인 다이묘(大名)에게 지방 권력을 주는 조건으로 임명 직후 1년간 에도에 살아야 한다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다이묘들이 에도에 오자 엄청난 수의 부속 인원이 따라왔고, 덕분에 에도는 급속도로 큰 도시로 발전하게 됐다.

▲  가쓰시카 호쿠사이, ‘파도 뒤로 보이는 후지산’, 다색목판화, 26.4×38cm, 1825년. 스펜서 컬렉션


인구가 늘어나면서 상업이 발달했고, 이를 기반으로 부를 거머쥔 새로운 세력이 나타났는데, 그게 ‘초닌(町人)’이라고 불린 부유한 도시 상인이었다. 이들이 만든 것이 도시 유흥문화였다. 현재의 대중문화와 같은 성격이다. 돈을 가졌지만 권력을 쥘 수 없었던 초닌 계급은 현실적 향락 문화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나타난 것이 우키요에였다. 그래서 현실적 주제가 대부분이다. 도시 일상생활을 담은 풍속화부터 풍경화, 가부키 배우나 기생을 그린 인물화 그리고 성적 주제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수요가 많아 목판화로 제작하게 된 것이다.

미국 시사 월간지 ‘라이프’는 금세기 벽두, 지난 1000년간 세계 역사를 만든 100대 인물을 발표했다. 서양인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선정했기에 리스트 대부분이 서양인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여든여섯 번째로 꼽힌 사람이 일본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1760∼1849)라는 인물이다.

호쿠사이는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우키요에 화가다. 후지산을 주제로 한 연작 목판화 ‘후가쿠 36경’이 대표작이다. 그런데 라이프지는 왜 그를 세계적 인물로 선정했을까. 답은 우키요에와 인상주의 미술의 관계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우키요에는 19세기 유럽으로 들어가 인상주의 화가들을 매료시켰다. 강한 색채 감각, 간결한 선으로 인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표현력, 평면화된 구성 방식, 도시 생활 정서 등이 인상주의가 추구하던 미학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우키요에를 통해 동양의 새로운 조형원리를 배우게 된 것이다. 간결한 선으로 사물의 특징을 잡아내는 방법, 색채의 독자적인 장식미, 입체감과 원근감 없이도 공간의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 극적 구성과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표현 방법 등이었다.

풍경 주제의 호쿠사이 우키요에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폴 고갱(1848∼1903)을 비롯한 많은 화가의 작품 세계에 직접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형체가 없거나 움직이는 것을 표현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여줬는데, 이런 방법은 후에 일본 만화가 독창적 표현 기법을 만들어내는 데 기반이 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파도의 표현이 압권이다. 극적인 긴장미와 함께 섬세함과 간결함 그리고 장식미까지 담아 일본적 탐미주의 미학을 압축해 보여준다. 유럽에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은 도쿄만(당시 에도) 주변의 바다를 소재로 한 우키요에다(후가쿠 36경에 속한 다색 목판화).

일정한 형체 없이 순간순간 변하는 파도를 간략하고 명확한 선을 이용해 극적으로 구성한 이 그림은 인상주의 화가들뿐만 아니라 클로드 아실 드뷔시 같은 음악가에게도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림 속 파도를 보고 있으면 굉음이 들리는 듯 힘차고, 포말은 야수의 발톱 같다. 거친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사람들은 자연의 기세에 눌린 듯 배에 납작 엎드려 있다. 생뚱맞게도 파도 저 너머에는 후지산이 솟아 있다. 솟아 있지만 큰 파도 아래다.

이 그림의 주제는 파도가 아니라 후지산이다. 거대하고 사납게 밀려오는 파도 아래 조그맣게 나타난 후지산은 의연해 보인다. 작가의 의도다. 후지산은 일본인의 정신적 상징이다. 여기서 거대한 파도는 당시 일본에 물밀 듯 들어온 서구 문명일 게다. 이를 받아들이는 일본인의 자세는 파도의 흐름을 타고 있는 배에서 보인다.

작가는 문명은 받아들이되 정신까지는 내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파도 뒤에 보이는 후지산에 담았다. 동도서기(東道西器·서양의 기술로 동양 정신을 구현한다)를 그대로 보여준다. 일본은 이런 자세로 20세기 경제대국을 이뤘고, 금세기 문화대국을 꿈꾼다. 후지산에서 시작된 호쿠사이의 파도는 지금 서구인 심장에 제2의 자포니즘을 새기고 있다.

1980년대 일본에서는 서양미술 수집 붐이 일어났다. 일본인의 서양문화에 대한 선망 의식과 문화적 허영심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거품이었지만,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수집의 관심이 인상주의 회화에 쏠려 있었다는 점이다. 인상주의는 일본 미술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수용한 미술이었다. 그 중심에 우키요에가 있었다.

특히 고흐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광은 대단했다. 고흐 그림을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만드는 데 앞장선 것도 일본이었다. 1897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일본 야스다 해운은 고흐의 ‘해바라기’를 3990만 달러에 사들였는데, 종전 최고 경매가의 세 배가 넘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1992년에는 ‘빈센트 반 고흐와 일본’이라는 대규모 전시회(교토 근대미술관/2월 18일∼3월 29일, 도쿄 세다가야미술관/4월 4일∼5월 24일)를 열어 고흐에 대한 일본인의 열렬한 사랑을 세계에 알렸다.

▲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이것이 일본인만의 짝사랑이었을까. 아니다. 일본을 향한 고흐의 프러포즈는 이미 100년 전에 있었다. 그것도 아주 열렬한 구애였다. 우키요에의 독특한 색채와 형태 묘사에 매혹됐던 고흐는 400여 점이나 수집했고, 작업실에 걸어두고 늘 연구했다. 심지어 자신의 기법으로 여러 점 모사하기까지 했다. ‘우키요에가 없었다면 고흐의 작품이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고,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미술사가들의 평가는 고흐 작품에 스민 일본의 숨결이 얼마나 짙은지를 보여준다. 일본은 100년이 지나 그에 대한 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 대한 맹목적 사랑으로 눈이 멀어버린 고흐의 고흐답지 않은 그림을 보자. ‘일본풍:빗속의 다리’란 제목의 그림이다. 1887년 가을 파리에서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에서 밝혔듯이 일본에 대한 노골적 관심을 드러낸 작품이다.

우키요에 12거장에 속하는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廣重·1797∼1858)의 작품을 원본 삼아 그대로 그려낸 것이다. 일본 풍경의 아름다움을 대중화시킨 우타가와는 시대를 뛰어넘어 일본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특히 서양화의 원근법과 광선에 의한 변화를 도입해 보이는 그대로의 경치를 담아내는 그의 그림은 인상주의 작가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았다.

우타가와의 대표작 ‘명소 에도 100경’은 도쿄 주변 절경 100곳을 직접 보고 목판화로 제작한 것이다. 이 중 91번째 풍경인 ‘아타케 부근 큰 다리 위로 갑자기 쏟아지는 비’라는 그림을 고흐가 자신의 기법으로 모사한 셈이다.

형태나 구도는 거의 똑같이 따라 그렸지만, 색채에서는 분별이 보인다. 일본 목판화와 유화 물감의 선명도나 색감에서 오는 차이가 우선이겠지만, 고흐는 색채 감각을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원작의 색채에서는 소낙비의 축축함이 묻어난다면, 고흐 작품에서는 급작스레 쏟아지는 빗줄기의 생동감이 일어난다. 원색의 강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작이 소나기 한복판의 다리 풍경이라면, 고흐 작품은 소나기가 시작되는 시점의 다리 풍경으로 보인다.

일본이 만화적 팝아트로 세계현대미술에 뚜렷한 흔적을 새길 수 있었던 것은 우키요에의 독창적 조형성과 미감 때문이다. (문화일보 9월4일자 22면 1 회 참조)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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