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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Her Story 게재 일자 : 2018년 10월 02일(火)
“참전용사들 만나 큰절 올리면 우셔… 죄송하죠, 잊고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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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 김씨가 지난달 20일 대전 중구 보문산공원로 ‘미군 대전지구 전승비’ 앞에서 ‘리멤버 727’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전 = 김선규 기자 ufokim@

한국전 참전용사들 넋 기리는 ‘리멤버 727’ 대표 한나 김

세계돌며 전적비·기념비 참배
전사자들 숭고한 정신 깨달아
남북정상회담과 날짜 겹쳤을때
더욱 의미가 커 더 힘났어요

워싱턴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
추모의 벽 건립이 당면한 목표
한국 사람들이 지원해줬으면

교통사고로 중상 입고 죽을뻔
현재의 일은 ‘덤 인생’ 사명감
나는 평화 뿌리는 메신저일 뿐
젊은 세대들의 참여 절실한 때


“한국전쟁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은 이제 80대 후반을 넘은 분이 많지만, 한시도 한국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동료들이 피를 흘려 지킨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너무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이제 완성 단계로 진정한 평화와 통일이 오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찾아뵙고 큰절을 올리면 눈물까지 흘리며 좋아하시고, 그분들이 오히려 저에게 ‘잊지 않고 찾아줘서 감사하다’고 하세요. 그런데 우리는 이분들을 잊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 할아버지들의 참전이라는 희생이 없었으면 저도, 우리 세대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이분들의 마지막 희망인 평화의 한반도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재미교포 한나 김(35) 씨는 지난 9월 15일부터 7일간 전국의 참전용사 전적비와 기념비 30곳을 일일이 돌며 참배하고 헌화했다. 이번 한국 일정은 3번째 ‘기억하라(리멤버) 727’ 프로젝트다. ‘리멤버 727’은 한국전쟁과 정전협정일(1953년 7월 27일)을 기억하면서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뜻을 담고 있다. 김 씨는 지난해 1월부터 4개월 동안 전 세계 26개국을 돌며 한국전 참전용사 200여 명을 만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또 지난 4월부터 3개월 동안은 미국 50개 주를 다니며 100여 명의 참전 용사를 만나고 70개 도시에 세워진 참전 기념비에 헌화했다. 그는 참전 용사들을 한국말로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찾아다녔다.

김 씨는 미국에서 활동 중인 ‘리멤버 727’ 단체 대표이자 한국전쟁기념재단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그는 “앞선 여정에서는 전 세계의 생존한 참전용사들을 뵈었다면 이번에는 자유와 평화를 지켜준 국내 참전비에 새겨진 전사자들의 고마움을 다시 일깨우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참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죠. 남북정상회담(9월 18∼20일)과 날짜를 맞춘 것도 아닌데 한창 참전비를 참배할 때가 같은 시기여서 더욱 의미가 크고 평화가 올 것 같은 느낌이 와서 더욱 힘이 나네요.”

그는 9월 15일 인천 맥아더 장군 상륙기념비 앞에서 출정식을 열었다. 이어 16일 경기 파주·동두천·연천, 17일 가평과 강원 춘천, 18일 양구·홍천·횡성·원주, 19일 경기 양평·여주·용인·수원·오산, 20일 평택과 대전·경북 칠곡, 21일 부산 유엔 참전 기념비를 찾아 참배하고 헌화했다. 전사자 명단을 일일이 확인해 넋을 위로하고 평화를 위한 기도를 했다. 그는 “오전 9시 30분에 나서서 숙소에 오면 오후 9시 30분이 될 정도로 강행군을 했다”며 “몸이 피곤해도 당시 전투 장면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사람들이 별로 오지도 않고, 참전용사비 주변에 각종 도로가 개설되는 등 찾기조차 힘들 때는 안타까웠다”고 토로했다.

“평택 남아공 참전용사 기념비 중 36명의 전사자 이름 제일 끝에서 ‘마이크 핼리’를 발견했을 때 눈물이 났습니다. 지난해 남아공에서 만난 공군 사령관 출신 데니스 존 어프(93) 장군이 말한 피를 나눈 전우였기 때문이죠. 핼리 씨는 한국전 참전 중 부상당한 어프 장군(당시 중위)을 구조해 업고 다녔고, 함께 포로로 잡혀 2년 동안이나 고생했다고 들었습니다.”

부산 영도구의 의료지원단 참전기념비를 찾았을 때는 102세의 고령인데도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스웨덴의 참전 간호사가 생각났다고 했다. 용인 터키 참전기념비에서는 백병전을 벌이며 치열하게 싸웠던 터키 할아버지들을 떠올렸다.

미국 명문대 석사 출신에 하원의원 수석보좌관까지 지낸 미모의 재원이 2년 가까이 사비까지 들여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달 21일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  한나 김(오른쪽 두 번째) 씨가 지난달 20일 대전 중구 보문산공원로 ‘미군 대전지구 전승비’를 방문, 박상원(왼쪽) 세계한인재단 총재 등과 함께 전승비 명문을 보고 있다. 대전 = 김선규 기자

―참전용사들에 대해서 이렇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뭔가.

“한국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이민했다. 엄마 아빠는 일 때문에 항상 바쁘셔서 어린 시절 추억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했던 게 많고 ‘그리움’이 있다. 전쟁을 치르느라 할아버지 세대가 너무 고생했고 아버지 세대는 먹고살기 위해 분투했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지금과 같은 풍요와 자유가 그냥 주어진 걸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휴전일인 7월 27일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종전을 넘어서서 통일과 평화의 시대로 가기 위해 727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6·25는 과거이고 7·27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어떤 활동을 해왔나.

“통일 이전에 기억, 인식(인정), 화해 3가지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11년 동안 꾸준히 활동해 왔다. 전쟁의 참상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전쟁은 몇 명의 정치 지도자가 자신의 사상에 따라 편을 갈라 싸우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지도자들 때문에 많은 피를 흘렸고, 가족이 흩어지고, 형제가 남북 군대로 갈려서 싸우는 비극이 벌어졌다. 평화의 한반도를 위해 지난 2008년 비슷한 뜻을 가진 청년들과 ‘리멤버 727’ 단체를 설립했다. 2009년 대학원을 다닐 때 미국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7월 27일을 ‘한국전 참전용사의 날’ 기념일로 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의 발의에는 역시 참전용사 출신인 찰스 랭글 연방 하원의원이 큰 도움을 줬고, 이 인연으로 랭글 의원의 수석보좌관으로 근무하게 됐다. 재직 중 한·미 동맹 강화 결의안(2010년), 한반도평화통일 결의안(2013년), 재미교포 이산가족 상봉 결의안(2016년) 등 다수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각종 결의안이 미 의회를 통과하는 데 역할을 했다.”

―지난해부터 참전용사들을 만나본 소감은.

“참전용사들은 자신들이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 한국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내가 한국식 풍습으로 큰절을 올리면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너무 좋아하신다. 태극기와 각종 빛바랜 사진, 그림, 기록물, 한국 인형, 기념품 등 애지중지 보관한 것을 보여주시며 추억에 젖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분들을 잊어버렸으니 감사한 마음이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할아버지들은 돌아가시기 전에 하나 된 한반도(원 코리아), 평화의 한반도를 꼭 보고 싶다고 한다. 그분들 자체가 전쟁의 참혹함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희생과 은혜를 잊지 않으려면 한반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 젊은 세대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돌아본 26개국 중에는 당시 적국이었던 중국, 러시아, 북한도 포함돼 있다. 이들도 진정한 평화를 원했다. 당장 이산가족들이 더 많이 상봉하고, 유해 발굴도 본격적으로 이뤄졌으면 한다. 북한에 가보니 북한 사람도 저와 똑같이 생기고 말도 통했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문제였다.”

―당면한 목표는 ‘추모의 벽’을 세우는 것이라는데.

“한국전 전사자가 미군만 3만6000명이고 실종자는 8000명이다. 미군 소속 한국 카투사 장병도 7052명에 달한다. 그런데 유해 발굴에서 찾아낸 분은 55구에 불과하다. 이분들의 이름을 모두 새겨 영원히 기념해야 한다. 워싱턴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 유리벽으로 세워질 ‘추모의 벽’ 건립 사업은 2016년 10월 관련 법안이 연방의회를 통과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으로 추진되고 있다. 25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현재 모금 기부액은 10억 원에 불과하다. 한국 국민 절반이 1000원씩만 모아도 250억 원은 될 것 같은데.(쉽게 계산하면 그렇다며 웃음)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은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했다. 이 추모의 벽이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한국 사람들이 주도한 것이라고 알려지면 얼마나 감동할까라는 생각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열심히 하게 된다.”

―사명감을 준 개인적인 신상 변화와 특이한 우연도 있다는데.

“23세 때인 2006년 1월 19일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고 죽을 뻔했다. 덤으로 사는 내 인생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목표를 정했다. ‘아,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오늘 하루를 열심히 후회가 없도록 살고 있다. 아직도 후유증이 있어 몸이 좋은 편은 아니다. 지금도 한 번씩 통증이 오면 ‘아직 살아 있으니 하나라도 더 일하자’라고 결심한다. 사고 자체가 사명감을 주기 위해 하나님이 내려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모의 벽을 세우기 위해 첫 모금 운동에 나선 게 4월 27일인데 이날이 내 생일이다. 이날은 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날이다. 이번 한국 출정 때도 3차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번 일정을 마친 21일에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내가 홍보대사로 있는 한국전쟁기념재단에 지난 8월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 당시 관을 감쌌던 성조기를 전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시민들이 추모의 벽을 만들도록 도와달라는 말도 했다. 이처럼 우연의 행운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내가 그동안 어린 마음에 애절하게 추구해온 일들이 다 이뤄질 것 같아 기쁘다.”

―무보수로 이런 일을 하는데 힘들지 않나.

“김창준 전 하원의원 등 너무 많은 분이 도와주셨다. 어쩌면 나는 이분들의 뜻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보는 분들이 공항에서 픽업을 해주고, 식사도 준비하고 재워주기도 했다. 이번 한국 일정에서도 렌터카를 빌려주시고 지역마다 2∼3명이 번갈아 가며 도와주셨다. 해병대 전우회 어르신들도 나오셨는데 강원 홍천에서는 해병대 3기라는 분이 한국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고 해서 너무 반가웠다.”

김 씨는 이날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서 헌화하는 것으로 한국 일정을 마무리했다. 유엔기념공원에는 한국전쟁의 전투지원 16개국, 의료지원 5개국 등 21개국의 참전용사들의 유해 2300기가 영면해 있다. 세계에서도 유일한 곳이다. 참전용사들에 대한 기념 사업을 하는 부경대 ‘유엔 서포터즈’ 학생 15명이 김 씨를 맞이해 함께 참배했다. 이날은 비가 많이 내려 더욱 장엄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김 씨는 “젊은 학생들이 따뜻하게 환영해줘서 너무 고마웠다”며 “이들을 보면 평화의 씨앗이 계속 뿌려질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장현창(부경대 경영학과 4학년) 씨는 “우리도 매년 1∼2개국의 참전용사들을 찾아뵙고 추모사업을 하고 있다”며 “김 씨에게 배울 게 많다”고 말했다.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재도 평택에서 부산까지 2일 동안 한나 김과 동행했다. 박 총재는 “김 씨와 함께 한인 후세들이 조국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김 씨는 “아직 안 간 곳이 괌과 아메리칸 사모아인데 10월 중 두 곳에 가서 참전용사들을 만나고 참전비에 참배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평화를 뿌리는 메신저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했다.

부산 = 김기현 기자 ant735@
e-mail 김기현 기자 / 전국부 / 부장 김기현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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