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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18년 10월 04일(木)
‘생각난다 그 오솔길∼’… 청아한 추억의 목소리, 37년만에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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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희 ‘꽃반지 끼고’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모습에 얼어붙은 내 발자국’(양희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중). 사랑이 왜 이루어질 수 없느냐, 왜 그렇게 세상을 삐딱하게 보냐며 애먼 대중예술가를 타박하던 때가 있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그래서 금지곡이 되었지만 노래를 향한 사랑마저 막을 순 없었으니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는 젊은이마다 이 곡부터 연습하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음악동네의 전설이다.

검열이 정열까지 누를 순 없다. 방해하는 힘이 클수록 저항력도 커진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이루어질 수없는 사랑’이라고 적으니 수줍은 소년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노웨어’(Nowhere)를 ‘나우 히어’(Now Here)로 끊어서 읽는 느낌이랄까. 가슴 가득 피어난 ‘수없는 사랑’의 별칭은 짝사랑이었다. 상대를 바꿔도 상처가 남지 않으니 ‘가성비’ 최고의 사랑 아닌가.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중). 돌아갈 순 없어도 돌아볼 순 있다. 1970년대 초반 소년의 일기장은 ‘수없는 사랑’으로 빼곡했다. 라디오 전파의 그물에 4명의 누나가 잡혔다. 박인희, 양희은, 이연실, 그리고 은희(사진). ‘하얀 조가비’ 박인희는 조곤조곤 교생선생님, 양희은은 공부 잘하는 누나의 이미지였다. ‘조용한 여자’ 이연실에겐 일탈과 신비가 느껴졌고 탤런트 고두심과 초중고 동창인 ‘제주 처녀’ 은희는 풀꽃처럼 순수해 보였다.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엔 모여서 함께 노래하는 문화가 있었다. 토요일에 종로 YMCA나 명동 YWCA에 가면 방대한 노래교실에 전석환이라는 싱얼롱 지도자가 있었다. ‘다함께 노래하자’ ‘노래의 메아리’ 등의 프로그램에도 나온 스포츠머리 사나이는 그 시절의 ‘방과 후 음악 선생님’이었다. ‘아름다운 노래 정든 그 노래가/ 우리 마을에 메아리쳐오면/ 어둡던 내 마음 멀리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노래 불러 봐요’. 그의 반주에 맞춰 따라 불렀던 정다운 노래, 제목조차 ‘정든 그 노래’였다.

양희은은 1990년대 초 뉴욕에서 돌아와 포크계의 대모로 남았지만 다른 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노래만 남기고 1980년대 초에 조용히 사라졌다. 그러다가 재작년 ‘모닥불’의 박인희가 돌아왔다. 컴백 콘서트의 제목은 그의 히트곡 ‘그리운 사람끼리’였다. 그리고 올가을엔 은희가 돌아왔다. 무려 37년 만이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연가’ 중). TV에서 은희를 보니 반갑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박인희의 공연장에서도 비슷한 걸 느꼈다. 우리의 사랑은 지나간 걸까.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중략)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이문세 ‘사랑이 지나가면’ 중). 하지만 귀는 눈보다 강하다. 음악의 줄기세포는 시든 영혼도 되살린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사랑해’ 중). 한류라는 말조차 없던 시절, 외국인이 예능프로에 나오면 대부분 부르던 노래가 혼성듀엣 라나 에 로스포의 ‘사랑해’였다. 그 청아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은희다. 돌아온 가수의 공연장은 초혼제를 방불케 한다. 김소월은 ‘초혼’에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 허공중에 흩어진 이름을 외쳤지만 ‘그리운 사람끼리’ 함께 부르는 그곳에선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 아니라 부르면 화답해주는 이름, 부르다가 부활하는 이름이 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어도 노인을 위한 노래는 있다.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 가슴 아픈 추억’(‘꽃반지 끼고’ 중). 좋은 음악은 등대와 같다. 등대는 우리를 착한 불빛 아래 모이게 한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등대지기’ 중).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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