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우리, 행복한 어린이>“도움받고 자랐으니 갚아야죠… 저처럼 ‘행복한 가장’ 또 나오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소년가장으로 모진 고생을 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홀로서기를 하며 이젠 어려운 아동을 돕고 있는 원태두 씨가 지난 과정을 돌이켜보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후원받던 아이서 후원자로… 원태두 씨

초등생 때 TV 나올 만큼 가난
중학생 땐 수해로 단칸방 잃어
초록우산 후원 통해 끼니 해결

대입·취직 등 홀로서기 성공
‘마음의 빚’ 갚으려 후원 시작
큰 돈은 아니지만 정성 담아

“어려운 환경에 처한 10代들
남과 비교말고 자신 놓지말길
미래 상상하면 이룰 수 있어”

힘들 때 주위로부터 받은 도움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갚기 위한 작은 실천을 하는 이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인성(人性)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분초를 다투는 삶의 각박함에 굴복한 탓이다. 남들은 쉽게 겪지 못한 고초로 점철됐던 10대 때, 자신을 품어준 사회의 온정을 다시 타인에게 되돌려 주겠다고 나선 청년이 있다. 후원기관의 후원 대상 아동이었다가 이제는 어엿한 후원자로 5년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아동을 돕고 있는 원태두(32) 씨 이야기다.

해맑은 미소가 돋보이는 원 씨에게 어렸을 때 겪었던 어두운 그늘은 놀랍게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촉망받는 엔지니어다. 2014년 경기 안산시 시화공단에 자리한 자동차 대기 가스 정화장치 제조회사에 입사해 현재 디젤 차량 평가 및 정비 업무를 맡고 있다. 자격증만 해도 대학 때 자동차정비기능사, 자동차정비산업기사, 검사산업기사 등 3개를 취득했다. 일도 보람이 있고 신바람이 난단다.

“엄청 재미있게 일하고 있어요. 머리도 써야 하고 몸도 많이 움직여야 하지만, 힘든 줄 모르겠습니다. 현장에서 기술을 습득하고 전수하겠다고 마음먹었더니 하루하루가 보람이라고 할까요.”

그는 캠퍼스 연인으로 대학 때 만난 아내와 10년 연애 끝에 2016년 결혼했다. 올해 겨울, 첫눈 내릴 즈음에는 아이가 태어난다. 자기 생각을 십분 이해해 주는 아내가 사랑스럽고 그 결실인 아이가 또 너무 보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일하는 손놀림에 책임감까지 더해진 듯 분주하고 바빴다.

원 씨는 20세를 넘긴 이후 목표 하나가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집을 빨리 마련하고 싶었다. 수없이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검절약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자가(自家)는 아니지만, 전셋집을 마련했다. 아직은 넉넉지 않을 텐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자신이 받았던 후원을 이제는 또 다른 어려움에 부닥친 아동·청소년에게 베풀기로 한 배경은 뭘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할머니 밑에서 동생과 살았어요. 가난하던 저희 형제 모습이 방송에 나간 적이 있는데 그 일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걔들 불쌍하다’ ‘가정환경이 좋지 못하니 어울리지 마라’ 등의 얘기를 들었죠. 사는 환경이 조금 다를 뿐인데 선입견을 품었던 거죠.”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올라와 두부 공장 지하의 단칸방으로 이사했는데 태풍 때문에 천장까지 물이 찼다. 갑작스러운 수마(水魔)에 가까스로 동생과 몸만 빠져나왔다. 그 후로 5개월 이상 떠돌이 생활을 했다. 형사사건에 휘말린 아버지는 소식이 끊겼다. 앞서 일찍 집을 나간 어머니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지금도 외가 쪽에 연락을 해보지만, 연(緣)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있다. 형제는 당시 아버지 지인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보증금 없는 월세방을 겨우 얻었다. 원 씨가 중학교 졸업을 앞뒀을 무렵이다.

“참 막막했죠. 그래도 어린 동생과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다행히 동사무소에서 도움을 받아 끼니는 해결했고 소년가장으로 등록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후원을 받게 됐어요. 저희 판잣집을 처음 찾은 재단 분들이 어깨를 토닥여 주시더니 ‘너무 열악하니 집을 옮기자’고 하시더군요. 어린 시절 방송을 통해 큰 상처를 받은 기억 때문에 망설였어요. 그래도 저의 마음조차 헤아리고 배려해주신 분들 덕분에 1000만 원이라는 소중한 돈을 지원받아 집을 구했어요.”

집에 대한 애착이 큰 이유다. 당시 공부도 잘하고 싶고 조종사에 대한 꿈도 있었지만, 집이 없으니 학업에 열중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재단의 정이 담긴 지원 덕분에 보다 안정적인 공간에서 끼니 걱정 없이 고교, 대학 진학을 위해 매진할 수 있었다. 이런 역경을 겪고 성인이 되고 남편이란 이름을 얻게 된 후 원 씨에겐 작은 고민이 생겼다. 회사에 입사한 후다. 10대 때 받은 후원을 ‘행복한 마음의 빚’으로 느꼈고 홀로서기에 자신감을 얻은 후 받은 걸 돌려줘야겠다고 각오했다. 그는 “생각만 하고 방법을 몰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며 “진로 고민에 한참이던 고3 때부터 형으로 부를 정도로 친하게 지내고 있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송진호 과장님에게 연락했더니 후원 방법을 알려줬다”고 했다. 그해 6월부터 후원을 시작했다.

“큰돈을 내고 싶지만, 저도 월급을 받고 사는 상황이다 보니 작게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보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분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동력이자, 작은 날개가 됐으면 싶은 바람이죠. 사실 아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주변 사람들을 더 챙기면서, 베푸는 삶을 살고 싶어요. 예를 들면, 저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좀 아니까 고민이 있으면 문제를 풀고 돕고 싶기도 하고요.”

정부가 아동·청소년 복지에 신경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사회 주변에는 음지에서 어려운 환경에 처해 고민에 휩싸여 있는 10, 20대가 숱하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원 씨는 “‘너는 소중해’ ‘너 자신을 놓지 마’,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며 “내 옆의 친구들과 자꾸 비교하게 되는 학생 때는 마음이 무너지기 쉬운데 저는 그럴 때마다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미래를 상상하곤 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걸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착실하게 한 발짝씩 내디뎠더니 어렸을 때의 소망인 ‘행복한 가정을 이룬 평범한 가장’에 어느덧 근접한 자신을 발견했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민종 기자 horiz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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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우리, 행복한 어린이 ’는 문화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공동기획으로 진행하는 연중캠페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