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국종 교수는 이 기록은 냉혹한 한국사회 현실에서 업(業)의 본질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각자의 선 자리를 개선해보려 발버둥 치다 깨져나가는 바보 같은 사람들의 흔적이라고 했다. 아주대병원 홈페이지
- 골든아워 1, 2 /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선진국형 응급의료체계’도입
중요성 알리려 치열한 노력
정치인·관료에 분노의 일침
환자 처참한 고통뿐만 아니라
간호사·소방대원 등 헌신까지
이송·치료과정 생생하게 기록
일면식도 없지만, 세상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아주 드물게 있다는 것쯤은 안다. 이 책을 쓴 이국종 교수 얘기다. 중증외상 분야 전문의 이국종. 이렇게 얘기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는 참으로 ‘대책 없는 인간’이다. 그도 부모에게는 자식일 것이고, 집에서는 가장일 것이며, 식당에서는 손님일 것이지만, 그는 늘 의사로만 사는 것처럼 보인다. 다친 사람을 치료하고 살려내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런 욕망도 없는 듯하다. 그를 만나본 이들은 하나같이 그가 ‘응급의료 체계와 외상센터 얘기’를 늘 입에 달고 산다고 말한다.
그는 치열하다. 그의 목표는 딱 하나. 우리나라에 선진국형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는 열악한 환경과 사람들의 몰이해에 맞서 오래 분투해왔다. 시스템의 부재와 부조리한 관료, 표만 좇는 정치인들을 향해 분노하고 포효하는 것을 넘어서 혀를 차기도 하고, 심지어 빈정거리는 일마저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책에서 ‘한국사회가 지닌 투명성의 정도로는 (중증외상 의료시스템의 정착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고 썼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가 말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절망적인 결론이 아니라 대중을 향한 ‘위협’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중증외상 의료시스템 정착이 얼마나 시급한 것인가를 알리기 위해서 그는 이런 식의 협박도 불사한다. 그는 이런 저간의 상황을 빗대 책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우리가 여태껏 해온 일들이 ‘똥물에 빠져들어 가면서도 까치발로 서서 손으로는 끝까지 하늘을 가리킨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소명에서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자신의 소명을 무겁게 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니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해야 했던 의사 입장에서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말이다. 이 책은 그의 무거운 소명과 그 소명으로 지켜온 외상센터 구성원들의 분투 기록이다. 저자는 뼈가 부러지고 살이 으스러진 환자의 치유 과정뿐만 아니라 사고 현장에 출동하고, 이송하면서 호흡을 유지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복기해낸다.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사는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신념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이 교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불편하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일’이 세상의 전부다. 타협이란 없다. 설득도 잘 안 된다. 자신의 일에 목숨까지 걸 태세다. 그래서 전문가다. 부인할 수 없다. 세상을 진전시키는 건 이런 ‘프로페셔널’들이다.
타협하지 않는 저자의 성격에 미뤄보면 이 책이 얼마만 한 노고와 정성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집필 기간만 5년, 촘촘하게 기록한 세 권 분량의 방대한 원고를 두고 출판사와 저자를 오가며 정리한 기간이 2년 반을 넘었다. 원고를 쓰면서 이 교수는 상황에 적합한 표현, 정확한 단어 하나가 생각나지 않으면 며칠이고 고심하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고 한다. 책에 대한 그의 방향은 확고했다. ‘꼭 남겨야 할 기록’이었다.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어서 저자의 글은 거침이 없다. 실명을 꺼내놓고도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출판사는 변호사의 꼼꼼한 자문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책 출간을 진행한 편집자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이 책을 손에 잡으면 놀라게 된다. 중증외상 환자들의 처참한 고통은 물론이고 이들을 살리려는 의사와 간호사, 응급구조사, 의료기사, 소방대원의 분투가 거의 완벽한 문장으로 생동감 넘치게 묘사돼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헌신은 감동적이다.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스스로 표현한 대로 ‘이과(理科) 남자’인 그는 놀랍게도 문장의 구성은 물론이고 문체와 속도감까지 자유자재로 다룬다. 글은 비장하고, 비유는 자못 중의적인데, 저자는 이런 문장을 소설가 김훈을 모사하면서 익혔다고 했다. 초 단위로 시간을 써야 하는 외상센터를 이끄는 의사의 입장에서 이만한 글을, 이만한 분량으로 써내기까지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로 했음이 틀림없다. ‘완벽주의자’인 것처럼 보이는 저자의 품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저자는 이 책 첫 장에다 ‘정경원에게’라고 적었다. 이 책을 그에게 바친다는 뜻이다. 정경원이 누구일까. 그는 책 안에 자주 등장한다. 전북 익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부산대 의대를 졸업했다. 부산대병원에서 외과 수련을 마치고 이 교수가 있는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에 합류했다. 이 교수의 수술법과 환자진료법을 배우며 혹독한 수련과정을 거쳤다. 지금은 아주대 의대 외과학교실 부교수로 있다.
간추리면 정경원은 이 교수의 제자 겸 동료다. 가족도, 스승도 아니다. 이국종은 이 책을 후배에게 바쳤다. 자신의 뒤를 이어 중증외상 의료시스템 구축의 소명을 이어받게 될…. 그는 진짜 프로페셔널이다. 감동적이지 않은가. 1권 438쪽, 2권 388쪽, 각각 1만5800원.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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