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프로듀서가 지난 2일 서울 양재동 신시 건물 앞에서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마틸다’ 홍보 간판 모습과 같은 포즈를 익살스럽게 취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30주년 신시컴퍼니 박명성 프로듀서
국내 첫 라이선스 ‘더 라이프’
170만명 관람 기록 ‘맘마미아’
2000년 초연한 뮤지컬 ‘렌트’
남경주·최정원 등 스타 산실
돈 안되지만 연극 꾸준히 기획
후진들이 공연 기본 배우게 해
빌리 엘리어트 등 판권 사들여
국내 아역배우 훈련시켜 무대
아이·어른 함께 보는 ‘마틸다’
뮤지컬 관객층 확대 겨냥 의미
“무대는 텅 비어 있다. 객석엔 빈 의자만이 즐비하다. 극장 안은 그저 어둠뿐이다. 그 어둠 속에서는 무대의 크기 형태 등 어느 것도 가늠할 수 없다. 오로지 극장의 추상적인 공간이 존재할 뿐이다. 어둠의 공간에 상상력이라는 입김을 불어 넣어 살아나게 만드는 것. 그것을 나는 프로듀서가 하는 일이라 감히 정의한다.”극단 신시컴퍼니의 박명성(55) 대표. 그의 명함엔 ‘프로듀서’라고만 적혀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공연 제작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공연계의 미다스 손이라고 불리는 그는 각종 국가 이벤트를 연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폐회식과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개막식 등의 총감독을 하며 이름을 떨쳤다.
그가 이끌어 온 신시컴퍼니가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단군조선의 신시(神市)에서 이름을 따 온 이 극단은 그동안 한국 뮤지컬과 연극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신시는 또 다른 30년의 미래를 시작하는 기념작품으로 뮤지컬 ‘마틸다(Matilda)’를 상연하고 있고,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The Play That Goes Wrong)’을 준비하고 있다. ‘마틸다’는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컴퍼니의 원작 판권을 사서 국내연기자들이 우리말로 연기하는 레플리카 작품이다. 도서관의 어려운 책을 모두 읽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어린 소녀 마틸다가 주인공이다. 마틸다가 아이들을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자신의 부모와 학교 교장에게 유쾌하게 맞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국 뮤지컬가를 뒤흔든 이 작품은 국내 마니아들이 원작 동영상을 유튜브로 찾아볼 정도로 걸작이다. 그러나 한국 공연은 모험 요소가 많다는 게 공연계 중평이었다.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작품이지만, 첨단의 실험성을 지닌 무대라서 국내 공연은 역시 위험성이 높다.
신시가 이처럼 과감한 도전을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지난 2일 박 프로듀서를 만나 인터뷰를 하기 전에 서면으로 먼저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는 ‘마틸다’를 통해 국내 관객의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야심을 내비쳤다. “아이부터 중장년 어른들까지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어려서부터 공연예술을 체험하고 문화에 대한 이해력을 높인다면 교육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마틸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도 할 수 있어요. 이처럼 관람층을 전 세대로 확대할 수 있는 뮤지컬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소중합니다.”
그의 말처럼 ‘마틸다’ 상연 현장(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 가면 어른과 아이 관객이 함께 웃으며 즐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매일 공연장에 가 본다는 그는 전작 ‘빌리 엘리어트’의 성공이 ‘마틸다’ 제작의 동인이었음을 시사했다.
“‘빌리 엘리어트’와 ‘마틸다’는 국내의 다른 제작자들이 라이선스 경쟁에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큰돈을 들여 3년 이상 준비를 해야 공연이 가능한 작품들이니까요. 아역 배우들을 오디션으로 뽑아서 장기간 체계적으로 훈련을 시킨다는 것도 힘든 일이지요. 실제로 ‘빌리’는 20개월을, ‘마틸다’는 4개월의 아역 배우 트레이닝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장기전으로 승부하는 작품을 무슨 배짱으로 선택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우리 신시는 큰 고민 없이 이런 도전을 해 왔습니다. 매사에 절실하게 일을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도 역시 레플리카 제작시스템으로 도입한 국내 초연작이다. 서울 양재동의 신시컴퍼니로 그를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1층 연습실에서 연기자들이 연습하는 장면을 지켜보게 됐는데,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마다 활기가 넘쳐났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첨단 작품을 한다는 자부를 연기자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박 프로듀서는 기초예술인 연극이 활성화해야 다른 공연 예술의 기반이 튼실해진다고 믿고 있다. 그런 확신 때문에 2009년 회사 이름을 신시뮤지컬컴퍼니에서 신시컴퍼니로 바꾸고 ‘레드’ ‘대학살의 신’ ‘피아프’ ‘가을소나타’ ‘렛미인’ 등 연극을 꾸준히 무대에 올렸다.
“신시는 그동안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두 개의 장르를 균형 있게 작업해왔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돈이 안 되는 연극을 왜 하느냐고 묻습니다만, 저는 연극을 잘 만들고 중극장을 경험해본 집단이 뮤지컬도 잘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향후 30년 미래 신시를 이끌어갈 후진들에게 무대공연의 기본과 본질을 깨닫게 해주고 싶습니다.”
기실 그는 연극배우로 공연계에 입문했다. 광주에서 고교를 마친 후 서울에 올라온 그는 전봇대에 ‘극단 동인극장 연구생 구함’이라는 광고를 본 후 무작정 찾아갔다. 고교 시절에 처음 본 연극 ‘산불’의 영향이었다.
“제가 해남 땅끝마을에서 태어난 촌놈입니다. 중학교 때 전기가 들어 온 시골이었지요. 일곱 명의 형제 중 대부분 교사, 공무원의 길을 갔는데, 저만 딴따라가 됐어요, 하하.”
현대극장, 마당세실극장 등을 전전하며 단역으로 몇 번 출연하다가 배우의 꿈을 접었다.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신체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예술대학의 무용학과에 진학했던 그였다. 그 꿈을 포기하기가 얼마나 아쉬웠을까. 그러나 그는 지금도 잘 판단했다고 생각한다. “배우의 외모가 아닌 데다가 연기도 썩 잘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는 1988년 극단 신시 창단 멤버로 들어가 연출 공부를 했다. “선배들이 제게 연출도 젬병이라고 했어요. 그래도 연극판에 남아 있고 싶어서 당시 미개척 분야였던 프로듀서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배우 지망생으로, 조연출로 고생했던 경험들이 뒤에 프로듀서로서 일하는 데 큰 자산이 됐다고 했다.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읽어내고 사람들을 통합해서 작업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공력을 쌓았다는 것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했던가. “제가 예술대학에서 무용을 공부한 것이 지금도 도움이 됩니다. 연극의 세계적인 추세가 신체 움직임을 강조하는 것이니까요.”
기획자로 일을 시작한 그는 1998년 국내 첫 정식 라이선스 계약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더 라이프’를 들여와 성공시켰다. 우리 공연계에 외국작품을 몰래 들여와 베끼는 일이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그 덕분에 ‘브로드웨이 박’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1999년 신시컴퍼니 대표를 맡았고 ‘시카고’ ‘갬블러’ ‘키스 미 케이트’ ‘렌트’ 등 라이선스 뮤지컬을 만들었다. 2000년대 들어서 ‘맘마미아’ ‘아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 ‘헤어스프레이’ ‘고스트’ ‘원스’ 등의 초대형뮤지컬을 선보이면서 장기 공연의 물꼬를 텄다.
그는 2000년에 초연한 ‘렌트’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 뮤지컬계에서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는 샘물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초연 멤버 남경주, 최정원, 전수경 등을 시작으로 이건명, 성기윤, 김선영, 정선아, 김호영, 박준면, 김영주, 황현정, 김수용, 김보경, 문종원 등 국내 뮤지컬의 대표적인 배우들이 이 작품을 거쳐 갔다.
2004년 초연한 ‘맘마미아!’는 지금껏 신시를 지탱하게 해 준 대박 콘텐츠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400회 공연, 170만 명 관람’ 기록은 국내 뮤지컬 역사를 새로 썼다. 중년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불러온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맘마미아’를 비롯해’ ‘시카고’ ‘아이다’ 등을 10년 넘게 장기 공연할 수 있었던 비결의 으뜸은, 전문 배우들을 캐스팅했다는 것입니다. 신시는 스타 배우들을 모셔 오지 않고, 우리 작품을 통해 스타를 탄생시켜왔습니다. 전문 배우들은 연습을 많이 하고 팀워크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작품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거죠. 큰 작품에서도 항상 의외의 신인배우가 주역을 하고 조역을 해 온 것이 신시만의 특징입니다. 그것이 뮤지컬 새내기들에게 꿈과 희망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신시에도 실패작이 있다. 1999년 ‘갬블러’ 공연이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했고, 2005년 중극장 규모의 신시뮤지컬극장을 운영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그가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우리 창작 뮤지컬을 장기 공연 레퍼토리로 정착시키지 못한 것이다. “차범석 선생의 ‘산불’을 뮤지컬로 만든 ‘댄싱 섀도우’와 조정래 선생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아리랑’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두 작품 중 한 작품이라도 장기 공연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 제 숙제입니다. 그걸 해결해야만 진정한 프로듀서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신시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지금껏 버텨온 힘으로 임직원들의 헌신을 들었다. 최은경 공동 대표를 비롯한 임원들이 20년 이상 한솥밥을 먹은 식구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제가 한 대학의 뮤지컬학과 교수로 가면서 최 대표가 살림을 맡았는데, 그 이후로 제가 프로듀서 일만 할 수 있도록 참 잘 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부심을 갖고 일하기 때문에 탄탄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태프 중 절반 이상이 15년 넘게 근무하고 있습니다. 공연기획사는 이직률이 높은데 신시는 왜 그렇지 않은지 연구대상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후배들이 출퇴근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놀러 다니듯이 하며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씁니다. 리더는 후진들이 자율적으로 일하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인내하며 기다려주는 따스한 지도력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가 한때 대학 강단에 섰던 것은 후학 양성에 대한 꿈 때문이었다. 8년간 후배들을 가르치며 보람을 느꼈지만, 강의보다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는 판단이 들자 미련 없이 교수직을 버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현장과 이론이 밀착돼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현장 일을 하며 시간을 쪼개 학교에서 대중예술 이론을 공부했을 때가 참 좋았기 때문이다.
“우리 신시의 정소애 본부장과 최승희 홍보실장이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선배로서 참 대견하게 생각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신시컴퍼니가 모범적인 세대교체를 이루는 모델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난 30년간 겁 없이 도전하며 잘 살아왔는데, 이제 겁이 나고 조심스럽기도 하네요. 그래서 저보다 일을 잘하는 후배가 많다는 것이 큰 위안거리가 됩니다. 신시의 미래 30년은 차세대에게 분양한다는 마음으로 꾸려져야 할 것입니다.”
인터뷰 = 장재선 문화부장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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