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北 비핵화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

美·北 2차 정상회담 추진하며
협상 동력 이어가려고 안간힘
‘톱다운’ 비효율 노출로 갈림길

김정은 核포기 진정성도 의문
남북 過速은 北제재 초점 흐려
종전선언 땐 상황 더 복잡해져

남·북이 정상회담을 통해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하고, 미·북 간 직접대화 국면이 활성화하자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관련국 간에 치열한 수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기대했던 영변 핵시설 폐쇄나 북한 핵 리스트와 종전선언 교환 문제의 진전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지만, 4번째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확인을 위한 국제 핵사찰단의 방북을 제의했다. 적어도 대화 동력 유지에 양측이 애를 쓰는 모양새다. 모호하던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간선거 이후가 될 것’이라고 확인해 일단 미·북 간 협상의 불씨는 살아났다.

그러나 미·북 핵 협상이 새 전기를 맞은 시점에서 몇 가지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우선, 북핵 문제와 미·북 간 핵 협상의 현주소를 잘 파악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는 기본적으로 북핵 폐기가 최종 목표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전개 상황은 지도자들 간의 큰 틀 합의를 기초로 진행되는 톱다운(top-down) 방식의 비효율성이 드러나고 있다. 실무 협상에 들어가면 기존 주장들이 되풀이되면서 교착 국면에 빠지기 때문이다. 북한은 일방적 핵 폐기는 무장 해제와 다를 바 없다며 기존 동시적·단계적 비핵화 추진과 미국의 단계별 상응 조치를 계속 요구한다. 핵 폐기 협상의 기초인 핵 리스트 제출과 신고·검증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종전선언과 대북 제재 완화가 핵 리스트 제출의 교환 조건이 됐다.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도 결국 북한의 지연 전술에 말려들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협상 동력의 유지도 중요하지만, 본질에서 멀어지는 비핵화 협상 구도의 고착도 경계해야 한다.

또, 적어도 현재까지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걸린다. 기존 북한 지도자들과는 달리 상당한 모험을 시도하고 있는 김 위원장은 북한의 성의에 비해 이른바 미국의 ‘상응 조치’가 없다는 불만을 품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일방적으로 미국이 요구하는 ‘신고-검증-폐기’로 이어지는 비핵화 로드맵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최소한의 장치로 미국에 종전선언 합의를 촉구하고 있다. 일단은 북한의 핵 능력을 하나씩 떼어 협상하고 보상받는 이른바 살라미 전술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이어진 북핵 협상의 경험은 대미 신뢰 구축을 위한 북한의 보다 과감한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회담을 진행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북한이 미국의 대북 태도 변화만 요구한다면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은 더욱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남북 관계 위주로 북핵 난국을 타개하려는 시도는 진의와 관계없이 자칫 관련국들의 협력을 얻어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미국 등 주변국의 우려를 살 수 있는 과도한 남북 경제 협력 비전은 남·북 관계 발전과 관련국들의 비핵화 쟁점을 분리시킬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핵보유국 지위를 가지고 미국과 군축협상을 하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이미 중국과 러시아를 미·북 비핵화 협상에 개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중국에 종전선언은 미국의 대중 견제 축의 하나인 주한미군이나 사드(THAAD)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호재다. 따라서 종전선언은 그 시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언에 합당한 관련 조치가 중요하다. 더불어 종전선언과 북핵 해결을 등가로 보는 착시 현상도 반드시 해소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 달성을 위해 분명한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 남·북 정상이나 미·북 정상이 강조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는 지금까지는 상징적 차원에서 기능을 수행했지만, 앞으로도 이 모호한 표현의 약효가 계속될 수는 없다. 미국의 불만과 국내적 안보 우려를 낳고 있는 남·북 군사합의 문제도 해소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우리민족끼리 ‘민족 공조’나 ‘북한의 체제보장’ 같은 말보다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계속 주문해야 한다. 북한이 진정으로 호응하지 않으면 중재자든 촉진자든 한국의 역할이 애매해진다. 이렇게 되면 냉전 질서에서 완전히 탈피하는 새로운 동북아 평화 환경을 조성해 영구적인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구상도 난관에 봉착할 것이 자명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