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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럼 게재 일자 : 2018년 10월 11일(木)
5·24 조치 해제할 명분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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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8년 전 봄볕이 완연해지던 3월 말,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키리졸브-독수리 한·미 군사연습 중이던 1200t급 함정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 정부는 5월 24일 독자적으로 대북 제재를 발표했다. 5·24 조치에는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제외한 방북 불허, 북한 선박의 남측 해역 운항 전면 불허, 남북 교역 중단,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대북 지원 사업의 원칙적 보류 등이 담겼다. 대북 신규 투자의 불허와 교역 중단은 조치의 골간으로,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5·24 조치는 현재까지 북한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유효하고 중요한 행정명령이다.

하지만 4·27 판문점 선언 이후 정부가 북한과의 경협을 가속화하기 위해 5·24 조치의 해제를 서두르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0일 국회 외통위 국감에서 5·24 조치의 해제를 관계 부처에서 검토 중이라고 답변했다. 야당의 반발이 강하자 범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번복했으나, 정부의 속내를 파악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특히, 거물급 여당 대표의 질의를 통해 자연스럽게 국회 공론화를 유도해내는 정부·여당의 합작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주무 부처도 아닌 외교부가 총대를 메고 ‘치고 빠지기’식으로 해제의 서곡을 울린 것이다. 강 장관 발언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문 대통령이 올해 말까지 남북 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수준까지 진도를 나가겠다는 발언의 가장 큰 장애물을 제거하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유엔 안보리 제재와 거리가 있는 교류 협력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분야를 정밀 검토하고 있다. 여당 대표가 질의한 대로 관광은 유엔 안보리 제재와 무관하게 진행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인적·물적 이동을 차단하는 조치의 해제 없이는 남북관계에서 불가역적인 조치를 할 수 없다는 정무적인 입장이 확고하다.

다음은, 교류 협력의 가속화에 대한 북한의 압력을 거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은 3차례의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 이후 남측에 각종 교류 협력의 청구서를 제시하고 있으나, 5·24 조치로 운신의 폭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 경협 관련 연구 조사나 하고 실질적인 대북 지원이 없다는 노골적인 북한의 압박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정부의 판단이다.

일단 정부는 야당의 반발을 고려해 한 발 물러섰으나, 2차 미·북 정상회담 이후 5·24 조치의 해제를 본격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5·24 조치는 정부의 행정명령이니 다수당인 여당이 밀어붙이면 해제를 야당이 현실적으로 제지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해제를 위해서는 필요·충분조건이 수반돼야 한다. 일부 조항에 대해 이미 유연화 조치가 이뤄진 데다, 현실적으로 5·24 조치의 내용이 ‘벌크 캐시(대량 현금) 유입 불가’ 등 유엔 안보리 제재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 해제되더라도 변화가 크지 않으리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 유엔 안보리 제재와 유사한 국내 행정명령을 선제적으로 해제하는 것은 제재의 효과성과 북핵 폐기 촉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해군에 대한 기습적인 무력공격으로 4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불행한 사태에 대해 북측에서 최소한의 유감 표명이 있어야 한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존립할 의미가 없다. 자국의 군대를 기습적으로 공격해 막대한 인명 피해를 준 상대에게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다. 5·24 조치의 명분 없는 해제는 국가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종국에는 안보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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