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팀장의 문장과 책>“나는 어제보다 조금씩 훌륭해진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어제의 나 자신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면 나는 어제보다 조금씩 훌륭해진다.”(10쪽)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등 교토(京都)를 배경으로 한 일련의 작품들로 국내에서도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는 모리미 도미히코(森見登美彦)의 소설 ‘펭귄 하이웨이’(작가정신)의 주인공 아오야마의 말이다. 아오야마는 언제나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메모하고 마을 구석구석을 답사하는 호기심이 넘치는 초등학교 4학년생이다.

유년시절의 호기심과 모험, 미지와의 조우, 시간이나 죽음에 대한 우주적이고 철학적인 상상력을 펼쳐내는 이 판타지 SF는 마을에, 남극에 있어야 할 펭귄이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는 이상한 사건에서 시작된다. 친구들과 이 문제를 파고 들어가던 아오야마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치과 누나가 콜라 캔을 던져 펭귄을 만드는 것을 보게 된다. 이어 체스판에서 박쥐가 피어오르고, 우산에서 망고가 열리고, 흰긴수염고래가 수로를 헤엄치고, 숲속에서 ‘바다’가 발견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작은 마을은 온갖 판타지가 피어오르는 마법의 공간이 된다.

걸어가면 세계의 끝에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유년 시절의 호기심에서 출발해 순수하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미지의 세계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꼬마들이 만드는 환상의 세계가 경이롭다. 아오야마는 소설 처음에 밝혔던 포부대로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며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돼 간다. 작가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일과 이해할 수 없는 일 사이에 있는 그 경계의 세계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2011년에 국내에 출간됐다가 절판의 운명을 맞았으나 이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개봉되면서 재출간됐다. 어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코 빠트리고 있는 바쁜 일상에서 고개를 들어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경이를 발견하시길. 428쪽, 1만3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