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우경화 전략은 ‘나시쿠즈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2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번 마지막 임기 중에 평화헌법 개정을 마무리 지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AP·연합뉴스

- 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 / 이헌모 지음 / 효형출판

개헌·헌법해석변경 동시추진
논란으로 에너지 소모 기다려
조금씩 목표 이루는 작전 주효

日내부 저항열기·거부감 식어
자위대 파병가능 개헌 가시권

자민당 파벌·세습·금권정치 등
전후 日정치역사·특징 파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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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9월 20일 자민당 총재 3연임에 성공했다. 아베는 내년 8월이면 전후(戰後) 최장수 재임 총리가 되고, 11월이면 1885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초대 총리 이후 일본 헌정 사상 최장기 집권 총리의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사학스캔들 의혹 등 위기를 돌파하며 우경화의 고삐를 쥐고 평화 헌법 개정을 최종 목표로 질주하는 아베 정권 지지도의 실체는 무얼까.

이 책의 저자 이헌모(55) 교수는 일본 와세다(早稻田)대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했고, 이후 지바(千葉)현 중앙학원대 법학부 교수로 28년간 터를 잡고 살아왔다. 저자는 우리가 세세히 알지 못하는 일본 정치의 밑바닥과 흐름을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기초부터 현장감 있게 풀어준다.

아베도 마찬가지지만, 대개 일본의 유력 정치인은 선대가 평생을 갈고 닦은 지역구와 후원회를 물려받아 몇 대를 잇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에도 있는 ‘떡값’이 일본에서 ‘모치다이’(モチ代·떡값)라는 같은 이름으로 존재한다. 우리에게 아직 귀에 익은 다나카(田中) 총리로 대표되는 파벌·금권정치는 자민당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한 토양이었다.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 자민당이 1955년부터 60년 이상 장기집권했다. 일본 국민은 기본적으로 변화보다 안정을 선호한다. ‘화(和)’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고, 공동체의 질서를 깨뜨리는 자를 따돌리는 ‘무라하치부(村八分)’ 등의 관습이 있다. 2009년 정권교체가 한 차례 이뤄지지만, 처음 집권한 민주당은 관료 조직과의 마찰, 우왕좌왕했던 개혁, 2011년 동일본대지진 복구과정에서 보여준 무능 등으로 3년간 세 명의 총리를 바꾸며 단명하고 말았다. 일본 국민 사이에 ‘구관이 명관’이라는 파토스가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

1990년대 버블경제의 거품이 꺼지는 가운데 대중선동의 강점을 발판으로 등장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그동안 자민당의 관행이었던 ‘파벌 균형주의’ 등을 과감히 깨부수고, 소선거구제와 정치자금법 등 개혁을 단행하며 정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이 같은 당 개혁의 가장 큰 수혜자가 당시 정치 신인이었던 아베 신조였다. 파벌 정치는 구심력을 잃었고, 총리의 권한은 크게 강화된 가운데 아베가 총리가 되자 정권 독주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됐다. 과거 자민당과 총리의 관계가 ‘자민당의 총리’였다면, ‘총리의 자민당’으로 바뀐 것이다.

삼대째 유력한 정치인의 세습 집안 출신인 아베는 재임 중 치른 선거에서 연승을 거듭해 ‘선거의 제왕’으로 불린다. 아베에 대한 일본 국민의 지지도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베는 ‘오토모다치(お友達)’로 불리는 측근·코드 인사, 우리로 치면 청와대인 ‘총리관저 기능’ 강화 등을 통해 정치와 관료사회의 장악력을 높였다. 자민당 의원들은 아베의 정치수법이 독선적이고 비민주적이라 할지라도 선거에 강한 총재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 사학스캔들로 2년 이상의 집중포화를 당하고도 당내에서 책임론이 일지 않고, 국민도 등을 돌리지 않는 것은 아베에 버금가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심은 거듭된 선거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평화 헌법 개정을 도모하는 아베의 행보다. 저자는 아베가 오랫동안 헌법개정의 포석을 깔아왔고, 이번 마지막 임기 중에 단행할 것으로 본다. 아베의 전략은 조금씩 조금씩 목표를 이뤄 가는 과정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나시쿠즈시(なし崩し)’라고 저자는 표현한다. 아베는 이미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해석의 변경과 안보 법안을 통과시키며 사실상 자위대의 해외파병도 가능해져 그가 공약한 전후체제의 탈피를 어느 정도 이루었다. 아베는 안팎의 저항이 강한 헌법개정과 더불어 헌법해석의 변경을 동시에 내세우면서, 그 논란으로 사회적 에너지가 소모되기를 기다렸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일본 사회의 의사결정이나 변혁 과정은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부지불식간에 일본 사회의 개헌에 대한 거부감이나 저항은 열기를 잃었고, 개헌은 이미 국민 사이에 기정사실이 됐다. 저자는 지금 야당으로서는 자민당을 끌어내릴 힘과 가능성이 없으며, 시민사회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상황이어서 아베의 우경화 노선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럴수록 우리는 일본에 대한 감정보다는 냉정한 사실 확인과 분석을 해야 바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256쪽, 1만4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