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값사용 소명못하면 자비로 메워라”… 허리띠 졸라맨 법원 왜?

법원장 비자금 횡령 의혹에
재판지원비 10% 삭감 공문

“작년 법인카드도 소명 요구
사실상 월급 깎인거나 같아”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로 인한 불똥이 일선 판사들 ‘지갑’으로 튀고 있다. 12일 법원 내부에서는 재판업무지원비 감축 등 난데없는 공문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재경지법에 근무 중인 A 판사는 최근 법원행정처로부터 ‘법인카드 사용내역 중 ‘OOOO’에 대해 소명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해당 공문에는 ‘소명하지 못할 경우에는 자비로 반납하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이에 대해 행정처 관계자는 “업무시간 외 사용이나 술집으로 추정되는 상호명 등에 대해 사용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공지는 통상적으로 해오던 업무”라고 해명했다. A 판사는 그러나 “지난해 사용내역까지 소명을 요구받았다는 동료 판사도 있다고 들었다”면서 “행정처 재정이 바닥난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말 법원행정처는 “올해 4분기 판사들에 대한 재판업무지원비를 10% 감축한다”는 공문을 돌렸다. 판사 재판업무지원비는 업무추진비와 비슷한 성격의 수당으로, 법관경력(호봉)에 따라 월 30만~60만 원가량 지급된다. 1990년대 후반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등 판사들의 향응 문제가 잇따르자 2001년 법인카드 형태로 재판업무지원비를 매달 지급하기 시작했는데, 판사들 사이에선 사실상 월급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행정처의 지원비 삭감 공문을 받은 판사들은 “월급이 깎인 것과 다름없다”며 부글부글 들끓고 있다.

판사들은 주로 검찰 사정 정국을 원인으로 꼽는다. 한 판사는 “사법농단을 수사하겠다는 검찰이 법원의 예산 운영 방식까지 걸고넘어져 ‘법원장 비자금 횡령’ 의혹이라고 몰고 갔다”면서 “이 같은 사정 분위기 탓에 행정처가 예산 항목 간 전용이 경색되면서 재판업무지원비까지 긴축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하는 얘기들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올해 들어 상설화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잦은 임시회의 소집 등으로 행정처의 예산 지원 항목이 늘어난 탓이라는 추측까지 내놓고 있다. 재경지법의 또 다른 판사는 “갑작스럽게 사실상 월급이 깎이게 되자 판사들의 불만이 확산하고 있다”면서도 “법원이 만신창이가 된 상황이라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판사들은 “예전에도 지원비가 깎인 적은 분명히 있지만, 국가적 예산 절감 기조에 사법부도 동참한다는 차원이었는데 이번처럼 사법부만 자체적으로 긴축재정을 펼친 적은 처음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행정처 관계자는 “재정부족 때문인데, 과거에도 재판업무지원비를 감축했던 적이 있다”며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법원행정처는 2013년에도 재판업무지원비를 10% 삭감한 바 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