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한·미 ‘北제재 인식차’ 커지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미 간 균열로 보일 만한 사례들이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핵 리스트 신고를 앞쪽에서 요구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면서 상응 조치와 관련한 미국의 융통성과 신뢰 구축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국정감사에서 5·24 조치 해제를 ‘관계 부처와’ 검토 중이라고 했다가 발언을 수정했다. 한국이 제재 해제를 고려 중이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승인 없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또한,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강 장관에게 군사합의서와 관련해 불만을 표시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현황을 마음 놓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건 분명해 보인다.

최근 미국이 보기에 한국은 어떻게든 제재를 완화하려는 것으로 비친다. 현 상황을 보는 근본적 인식의 차이에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남북 관계의 개선이 궁극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선순환을 믿고 있고, 미국은 현 단계의 남북 관계 개선은 외려 북한의 비핵화에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지금 남북 관계 개선이 북한이 도발하지 않는 상황을 이끈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이 도발하지 않는 것과 핵을 포기하는 건 다른 문제다. 미국이 남북 관계에서 속도 조절을 강조하는 이유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왜 북한이 협상에 나섰는지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미국은 북한의 태도 변화가 근본적으로 강화된 대북 제재와 압박에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협상에 나선 이유가 김정은의 정책 변경 의지에 있다고 본다. 기존의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 중심 정책으로 바꾼 만큼 제재를 풀어야 할 필요 때문에 협상에 나선 것이지, 제재로 인한 압박 때문에 협상에 나선 게 아니라는 해석이다. 원인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방법론의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가을 들어 북한 비핵화에 대한 한·미 간 방법론의 차이가 더 커지고 있으며, 이는 다시 왜 인식의 차이가 나는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미국에서 한국이 이념 때문에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의구심이 더 커진 중요한 이유는 문 정부의 정책이 북한의 입장에 따라 변한다고 보는 데 있다. 9월 남북 정상회담 전에는 종전선언과 핵 리스트 신고를 교환하는 방안이 강하게 제기됐고, 그에 따라 미국에서도 ‘선언’과 ‘신고’를 교환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북한에서 이를 받을 가능성이 없어 보이자, 갑자기 종전선언은 기본적인 상응 조치일 뿐이고 그에 더해 제재 완화가 있어야만 북한과 협상할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가 한국 쪽에서 나오는 데 대해 의아해한다.

본인의 대북 정책에 대해 비난이 쏟아질 때면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면서 북한에 아무것도 내준 게 없다고 말한다. 북한 문제에 대한 그의 이해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북한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것은 제재 해제라는 점을 꿰뚫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재를 통한 압박만이 유일한 수단이라고 보는 상황에서 비핵화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진전 없이 제재 완화 및 해제를 요구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목적이 북한의 비핵화에 있는지, 아니면 북한의 핵을 용인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심증이 있다고 강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김정은이 물증을 내놓도록 하는 게 북한 비핵화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