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 “이야기의 중심 잡는 캐릭터… 화려한 꽃보다 든든한 줄기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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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배반의 장미’ 배우 김인권

“씨앗을 많이 뿌려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수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해로 데뷔 20년을 맞은 배우 김인권(사진)은 “신중하게 작품을 고르던 시기를 거쳐 이제는 뭐든 막 하려고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는 톡톡 튀는 캐릭터를 반복해서 연기하며 소모되는 느낌이 들었다”며 “그래서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너무 가라앉았고, 이제는 영화와 영화 외적인 활동도 다양하게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가 이미 뿌렸거나 앞으로 뿌릴 ‘씨’는 액션 영화 ‘레전드’를 비롯해 스릴러 ‘순이’, 사회풍자영화 ‘이 세상을 사는 법’, 전쟁영화 ‘장사리 9.15’ 등 장르도 다양하다.

그중 독특한 형식의 코미디 영화 ‘배반의 장미’(감독 박진영)가 오는 18일 개봉한다. 이 영화는 인터넷 자살 모임에서 만난 세 남자가 한 날 한 시에 죽기로 하고, 의형제를 맺지만 뒤늦게 여성 멤버가 합류하며 일이 뒤틀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영화에서 모임의 리더 ‘최후의 불꽃’ 역을 맡은 김인권은 “이야기의 중심을 잡는 캐릭터라 꼭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감독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나리오만 보고 출연을 결정했어요. 그동안 해온 것과 달리 전체 이야기를 이끄는 역할이라 마음이 끌렸어요. 100억 대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텐트폴’ 영화에서는 제게 그런 역할을 줄 리 없잖아요. 저예산이라 기회가 온 거죠(웃음).”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듯 다른 캐릭터의 맛을 살리며 이야기를 이끌었다.

“제한된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맛깔나게 풀어내야 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어요. 제가 치고 나가기보다는 다른 배우들을 받아주는 ‘다리’ 역할에 집중했어요. 또 죽음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 코미디로 생명을 경시한다는 말을 들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 부분도 신경 쓰며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가려고 노력했어요.”

그에게 “20년을 버텨온 동력이 뭐냐”고 묻자 바로 “운”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슬프고 고단한 삶이었지만 운이 좋았어요. 힘든 시기에 배우라는 번듯한 직업을 얻었고, ‘어디서 본 듯한 애’에서 이젠 ‘배우 김인권’으로 알아주시는 게 모두 운이라고 생각해요. 세 딸을 키우며 가정도 잘 꾸리고 있잖아요. 운이 없었으면 아마 어두운 세계에 빠졌을 거예요(웃음).”

그러면서 앞으로는 화려한 ‘꽃’보다는 든든한 ‘줄기’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신인 때는 꽃이 되려고 안간힘 썼어요. 하지만 지금은 꽃을 아름답게 피우려면 줄기에서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한다는 진리를 알게 됐어요. 그런 줄기 역할을 하면서 늦게 꽃을 피우면 그때는 줄기를 돕는 꽃이 돼야죠.”

글·사진 =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