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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8년 10월 16일(火)
‘디바’ 휘트니 목숨 지켜줄 보디가드 있었다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엔 짙은 그림자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1991년 슈퍼볼에서 미국 국가를 열창하는 휘트니 휴스턴.
▲  영화 ‘보디가드’에서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아티스트를 연기한 휘트니 휴스턴.


■ 윤성은의 스크린 인물학 - ③ ‘휘트니’의 휘트니 휴스턴

타고난 목소리·리듬감·曲해석
데뷔 직후 10여년간 팝의 여왕
슈퍼볼서 부른 美 國歌 大히트

영화 ‘보디가드’ 세계적인 성공
20세기 최다 판매 영화 OST로
흑인사회 큰 위로·자긍심 선사

어린 시절 성추행 등 ‘트라우마’
부와 명예만큼 무거웠던 부담감
일부선 “백인음악 흉내” 비난도

2000년대초 ‘마약중독’ 알려져
대중들의 야유·비난 뒤로한 채
2012년 48세 나이로 세상 등져


연일 화제를 모으며 월드투어 중인 방탄소년단의 멤버, 슈가는 최근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언젠가 우리가 슈퍼볼(미국프로풋볼리그 결승전)에서 공연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쉬는 시간에 이뤄지는 하프타임쇼를 의미한 것이지만, 슈퍼볼의 시작을 알리는 미국 국가 연주 또한 최고의 가수들만 초대받는 순서다. 이것을 전설적인 공연으로 만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디바(diva)’로 불린 최초의 가수, 휘트니 휴스턴이다. 1991년 슈퍼볼에서 그가 부른 미국 국가(Star-Spangled Banner)는 그대로 그의 히트곡 중 하나가 됐고, 이후 슈퍼볼의 국가 연주는 자유와 평등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자리가 됐다.

▲  ‘보디가드’ 속 케빈 코스트너와 휘트니 휴스턴.


◇휘트니 휴스턴과 ‘휘트니’

데뷔 음반 2500만 장 판매, 전 세계 누적 음반판매량 2억 장, 그래미상 6회 수상, 7회 연속 빌보드 싱글차트 1위, 빌보드 싱글차트 14주간 1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여성 뮤지션.

‘인기’를 수치화하는 방식은 어떤 면에서 다소 얄팍할 수밖에 없지만 휘트니 휴스턴을 따라다니는 진기록들을 저평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데뷔 앨범 ‘휘트니 휴스턴’을 발표한 1985년부터 10여 년간은 그의 시대였다. 머라이어 캐리가 첫 앨범을 내놓은 1990년 이후 미디어는 두 사람을 라이벌 구도로 만들기 좋아했지만, 5년이나 먼저 데뷔한 휘트니 휴스턴은 이미 폭넓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마약복용설이 나오기 전까지 어떤 무대에서도 디바로서 빛을 잃지 않았다. 그는 엄청난 폐활량을 바탕으로 황홀한 멜리스마(melisma·하나의 모음으로 여러 음정을 내는 것)를 구사했고, 발라드부터 댄스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이후 수많은 후배가 그의 창법을 모방해 왔음에도 직관적 리듬감과 맑고 깊으면서도 강한 목소리 자체의 결은 그저 타고난 것이기에 그에게 필적할 만한 보컬리스트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가창력뿐 아니라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질을 두루 갖췄던 휘트니 휴스턴은 가수로 데뷔하기 전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주연을 맡았던 영화 ‘보디가드’ 또한 큰 성공을 거뒀고, 몇몇 영화에 프로듀서로도 참여했다. 2000년대에도 몇 장의 앨범을 더 내며 활동을 이어갔으나 부와 명예만큼 무거웠던 부담감은 그를 마약중독에 빠뜨려 마흔여덟의 나이로 영영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케빈 맥도널드가 연출한 ‘휘트니’는 엄마, 이모, 사촌 등 가수에 둘러싸여 자랐던 휘트니 휴스턴의 남다른 어린 시절부터 화려한 성공 및 슬럼프,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던 아침까지 한 사람의 인생을 꼼꼼하고 균형 있게 다룬 다큐멘터리다. 휘트니 휴스턴의 성장과 당대의 정치·사회적 이슈를 병치시키면서 편집의 묘를 발휘한 부분도 있으나 연대기 순으로 정리돼 있어 기존 다큐멘터리들과 형식상의 차별점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자료화면과 측근들의 솔직한 인터뷰에서 공이 많이 들어간 작품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후반부에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유년 시절 성추행 피해 경험이 담겨 있어 충격을 안겨주는데, 말 못할 트라우마를 숨기고 커다란 무대에 혼자 올랐을 그의 외로움과 때 이른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휘트니 휴스턴 생전의 주옥같은 라이브 무대들을 다시 만나는 기쁨과 그를 잃어버리게 된 과정의 슬픔이 동시에 전해지는 희비극 같은 작품이다.


▲  휘트니(왼쪽 두 번째)의 결혼식 사진. 휘트니 오른쪽이 남편이자 가수 바비 브라운.


◇화이티 휴스턴과 슈퍼볼 공연

‘휘트니’는 휘트니 휴스턴의 천부적인 재능과 더불어 그의 존재가 미국 흑인 사회에 주었던 위로와 자긍심을 강조한다. 백인 중심의 대중음악계, 나아가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흑인 여성의 유례없는 성공은 어려운 환경에 있는 흑인들에게 큰 희망이 됐다. 그러나 데뷔 초부터 한편에서는 그를 ‘충분히 흑인답지 않다(Not black enough)’는 말로 공격했고, 흑인 라디오 방송국에서 그의 음악을 내보내기를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화이티 휴스턴(Whitey Houston)’이라는 별명 또한 그가 백인의 음악을 따라 한다는 비난에서 나온 것이었다. 영국 유력 음악 잡지인 ‘NME’가 힙합을 흑인 음악계의 정통이자 미래라고 말하던 시절이었다(밥 스탠리, ‘모던 팝 스토리’). 그러나 팝의 역사에서 백인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음악을 모방하고 흡수하다가 종국에는 원래 자신들의 것인 양 만들어 버린 사례들을 볼 때, 휘트니 휴스턴의 행보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무엇보다 일각의 곱지 않은 시선도 하나의 현상, 혹은 징후라고 할 만한 그의 성공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91년 슈퍼볼에서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미국 국가는 인종을 뛰어넘어 열렬한 환호를 받았는데 기존 4분의 3박자 곡을 가스펠, 블루스 등 흑인 음악에서 많이 사용하는 4분의 4박자로 편곡함으로써 곡에 대한 그만의 해석이 들어갈 여지를 더한 것이 주효했다. 걸프전 종전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가벼운 운동복에 머리띠 차림으로 관중 앞에 선 그는 열중쉬어 자세로 높은 음역대의 ‘자유(free)’라는 단어를 가성으로 처리함으로써 그 의미를 강조했다. 미국 국가의 가사가 지극히 전투적이라는 점, 역사에서 그 폭력의 일부는 흑인을 향한 것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그의 공연은 미국 국민 모두에게 애국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립싱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두 달 후 싱글로 발표돼 큰 인기를 모았고, 2001년 9·11 테러 이후 재발매되기도 했다. 이후 휘트니 휴스턴의 2분 남짓한 이 공연은 슈퍼볼 국가 연주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됐는데, 비근한 예로 2017년 슈퍼볼에서는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선수들이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한쪽 무릎을 꿇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사건도 있었다. ‘휘트니’는 휘트니 휴스턴의 슈퍼볼 국가 연주 실황을 러닝타임의 정가운데 배치한 다음, 대중의 인터뷰를 삽입시켜 당시 그를 향한 미국인들의 사랑을 입증한다.


▲  윤성은 영화평론가
◇‘보디가드’와 남아프리카공화국 공연

‘보디가드’(감독 믹 잭슨·1992)는 휘트니 휴스턴을 미국을 넘어 글로벌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였다. 지금까지도 최고의 영화 삽입 곡(film songs) 중 하나로 회자되는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가 지구촌 곳곳에서 울려 퍼지면서 ‘보디가드’의 OST는 20세기에 가장 많이 팔린 영화 사운드트랙으로 기록된다. ‘휘트니’는 이 부분에서도 상대역이었던 케빈 코스트너의 인터뷰를 빌려 휘트니 휴스턴이 할리우드의 역사 속에서 백인 여배우들에게만 허락됐던 역할을 해냈음을 밝힌다. 극중 휘트니는 코스트너를 보디가드로 고용한 유명 엔터테이너로서 1930년대 스크루볼 코미디의 여주인공처럼 사회적 지위상 남성의 우위에 있으며 남녀 관계에 있어서도 상대방보다 적극적이고 솔직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전용 비행기를 멈추고 사랑하는 남성과의 연애를 로맨틱하게 완성하는 주체적 흑인 여성 캐릭터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휘트니 휴스턴의 연기력이나 영화 자체에 대한 혹평도 있었지만, OST의 인기 속에 쉽게 사그라들었다.

넬슨 만델라가 선거에서 승리한 후 인종차별정책이 철폐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휘트니 휴스턴이 최초로 공연한 메이저 아티스트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94년 11월 요하네스버그 공연에서 그는 아프리카 전통의상을 모티브로 한 금빛 드레스를 입고 수많은 관중과 호흡하며 노래했는데, 말 그대로 여왕 같은 모습이었다. 엘리스 파크에서 열린 엄청난 규모의 공연실황이 말해 주는 것은 그가 세상을 위로하고 감동시킬 만큼 큰 영향력을 지닌 사회적 인사가 됐다는 사실이며, 그것은 명백히 목소리나 가창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애도와 기억

그래서 휘트니 휴스턴의 몰락과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1980∼1990년대에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함께 나이 들어 온 어느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그는 많은 이의 롤 모델이었고, 그의 음악은 우리 청춘의 한 조각이며, 소중했던 추억의 필름에서 분리할 수 없는 미장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휘트니 휴스턴이 마약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 후 그에게 돌아온 것은 사실, 위로나 해결책이 아니라 싸늘한 야유와 비난이었다. 그가 오랫동안 대중에게 주었던 즐거움을 완전히 잊은 채 미디어는 앞다퉈 그를 희화화했다. ‘휘트니’는 그의 성공만큼이나 이 시기에 대해 자세히 다룬다. 남편, 딸, 아버지 등 가족과의 불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유명세 등이 그를 힘들게 했음을 암시하는 영화의 후반부에는 깊은 연민의 시선이 깔려 있다. 뉴욕의 한 침례교회에서 열렸던 그를 위한 기도회에 2000명이 넘게 모였던 일화 역시 대중, 특히 흑인 커뮤니티가 끝까지 그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2012년 2월 11일, 휘트니 휴스턴은 그의 목소리가 내려온 천국으로 다시 거처를 옮기고 만다. 영화는 그의 죽음을 그 자신의 연약함이나 주변인들의 무능함 탓으로 돌리는 대신 그저 눈부신 재능을 가졌던 한 아티스트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애도하면서 끝난다. 수많은 인파가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장례식 풍경과 ‘홈(Home)’을 불렀던 TV 쇼 데뷔 장면, 즉 노래하는 스무 살의 휘트니 휴스턴을 병치시킨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우리가 휘트니 휴스턴에 대해 계속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할 두 가지 테마, 그의 재능과 그를 향한 사랑이 여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여전히 억압과 폭력으로 가득 차 있지만 ‘홈’의 가사처럼, 언젠가 “평화롭고 기쁨이 넘치는 세상” “우리가 나눴던 사랑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을 곳”에서 그의 새 노래를 들어볼 날이 있으리라.

윤성은 영화평론가 (문예지 ‘쿨투라’편집위원·‘윤성은의 스크린뮤직’ 팟캐스트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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