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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18년 10월 18일(木)
아이돌 귀환에 엄마가 된 소녀들 열광… 몸은 변해도 마음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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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T ‘캔디’

지하철 기다리는 몇 분이 때로는 길게 느껴진다. 가만히 서 있느니 뭔가 쓰여 있는 스크린도어 쪽으로 몇 발짝 이동한다. ‘그대 지금 어디로 가는가/왜 가는가’를 묻는 짧은 시를 만날 수도 있다. ‘한때는 바위였다고 얘기하지 마라/지금 돌멩이면 돌멩이로 사는 거다’(김지영 ‘한때는 나도’ 중).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오고 문이 열릴 때 ‘자리’보다 ‘자신’을 찾는 시간을 갖게 된다면 이 또한 유익하지 아니한가.

‘모든 게 다 변한 거야/널 향한 마음도/그렇지만 널 사랑 않는 게 아냐/이제는 나를 변화시킬 테니까’(HOT ‘캔디’ 중). 달콤한 멜로디가 예능프로그램이 아닌 TV 뉴스에서 나온다. 마흔 전후의 남자들이 그때 그 시절 의상을 그대로 차려입고 춤을 춘다. 귀여운 건지 가여운(?) 건지 살짝 혼란스러운데 카메라는 복잡한 심경을 도외시한 채 환호하는 왕년의 ‘소녀’들을 번갈아 비춘다. 격해서 우는 사람도 더러 보인다. 스타들의 감흥도 조금씩 다를 것 같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조용필 ‘단발머리’ 중) 그 소녀를 떠올리기도 하고 ‘청춘아 너는 어찌 모른 척하고 있느냐/나를 버린 사람보다 네가 더욱 무정하더라’(나훈아 ‘고장 난 벽시계’ 중)며 세월을 탓하기도 할 것이다.

10월 들어 잠실의 주말이 소란스러웠다. 라이벌 대전(大戰)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10월 첫 주엔 연고전이 열려 20대의 함성이 잠실을 뒤덮었다. 두 번째 주말엔 30대가 몰려들었다. 1990년대 아이돌 HOT(사진)와 젝스키스가 한바탕 음악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다. 기억은 짧지만 추억은 길다. 음악엔 시간을 되돌리는 힘이 있다. 마치 영화 ‘베놈’에서 주인공이 외계생물체와 공생하듯 현장엔 엄마가 된 (그때) 아이들과 아이가 된 (지금) 엄마들이 혼재했다. 관객층을 배려해 공연장에 미아보호소까지 설치했지만 다행히 미아는 발생하지 않았다.

▲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MBC ‘음악캠프’ 책임프로듀서(CP)를 할 때 제작진의 유념사항 중 하나가 방송사 앞에서 노숙하는 팬들을 어떻게 돌려보내냐는 것이었다. 인기 아이돌이 출연한다는 예고가 나가면 그 전날 밤에 이불을 까는 1318(중고생)이 속출했다. “학생들은 빨리 귀가하세요.” 안전 책임자의 하소연은 ‘꼰대’의 설교에 불과했다. 아이들의 합창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생방송이 시작되면 객석이 무대보다 뜨거웠다. 팬클럽끼리의 라이벌 의식이 열기를 부추겼다. 무대 위(부조)에선 다 볼 수 있었다. 극단적인 사례로 HOT 팬들 일부는 젝스키스가 나오면 외면하고 젝스키스 팬들은 HOT가 나올 때 일부 퇴장했다. 스튜디오 밖에서도 요란하긴 마찬가지였다. 1998년 제13회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시상식 때 두 팬클럽이 충돌해 9시 뉴스에까지 등장한 건 유명한 사건이다. 그때 느꼈다. ‘편이 다르면(우리 편이 아니면) 대화는 물론 눈길조차 피하는 일부 어른의 악습이 음악동네까지 침범했구나.’

‘십대들의 승리’(High-five Of Teenagers)를 내걸고 등장한 HOT는 청소년에게는 달콤한 ‘캔디’를, 기성세대들에게는 ‘전사의 후예’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는 세상의 틀을 바꿔버릴 거야/ 내가 이제 주인이 된 거야/ 어른들의 세상은 이미 갔다/ 낡아빠진 것, 말도 안 되는 소린 집어치워’(‘We are the future’ 중) 그러나 시간 앞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경쟁자를 이길 순 있어도 세월을 이길 순 없다. 시간은 승부를 무력화시킨다. 그리고 그들은 어른이 됐다.

구름처럼 몰려온 것들은 구름처럼 사라진다. 한바탕 격전이 끝난 자리에 꽃노래가 울려 퍼진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백설희 ‘봄날은 간다’ 중). 슬퍼하지 마라. 사탕이건 칼이건 모름지기 손에 든 것보다는 속에 든 것이 중요하다. 10대의 몸은 떠나보내도 10대의 정신은 영원히 가질 수 있다. 봄날보다 더 좋은 것은 앞날이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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