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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18년 10월 19일(金)
빗나간 욕망이 부른 참극…옛날에도 지금과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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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말 풍속화가 김준근의 ‘살인에 검시하는 모양’. 시체를 수습하는 오작인이 사체를 닦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 박물관 소장. 휴머니스트 제공
▲  조선 법의학서 ‘중수무원록 언해’에 수록된 사망자 신체 부위를 그린 시형도(屍型圖). 휴머니스트 제공

- 100년 전 살인사건 / 김호 지음 / 휴머니스트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초
사건 보고서 치밀하게 탐구
불륜 배우자를 자살로 위장
묏자리 다툼·아동 살인 등
엽기적·충격적 사건들 가득

인간사회 갈등·알력·다툼은
시대 초월하는 것임을 알려


역사 이래로 사람 사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든 사건·사고가 이어졌고, 누군가는 사람을 죽였고, 누군가는 원통한 죽임을 당했다. ‘성서’만 봐도 인간은 창조와 거의 동시에 살인을 저질렀다. 조선시대도 다르지 않아서 적잖은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원인을 밝히려는 작업도 분주했다. ‘100년 전 살인사건’은 100여 년 전 작성된 살인사건 보고서인 검안(檢案)을 치밀하게 탐구한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의 책으로, 살인사건이라는 다소 독특한 창을 통해 조선 사람들의 욕망과 사회상을 들여다본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소에 소장된 검안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기록된 것들로, 대략 2000여 책이 있고 그 안에 담긴 사건은 500여 건이다. 저자는 그중 15건의 살인사건을 통해 ‘100년 전의 특별한 사건에 깃든 평범한 일상’을 들춰낸다.

검안은 검시문안(檢屍文案)의 줄임말로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검시하고 작성한 시체 검사 소견서, 즉 법의학적 판결문인 ‘시장(屍帳)’과 사건 관련자 심문 기록인 ‘공초(供招)’를 포함한 일체의 ‘살인사건 조사 보고서’이다. 살인사건은 그 중요성 때문에 통상 두 차례 조사를 실시했는데, 1차 조사를 맡은 초검관은 조사 내용을 2차 조사자인 복검관에게 발설할 수 없다. 1, 2차 내용이 부합하면 사건이 종결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3차 조사로 이어졌다. ‘철저한 조사를 위해 한 사건을 무려 다섯 차례나 조사한 사례’도 있다. 당대는 죽은 사람을 두 번 욕보인다는 이유 등으로 시체 해부를 할 수 없었고, 오로지 시체의 외상과 색을 주로 살폈다. 한편 저자는 특히 ‘오늘날의 녹취기록에 버금가는’ 공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당대의 많은 소민, 나아가 부녀자들의 목소리가 아전의 손을 빌려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목한 첫 사례는 ‘상놈 집에서 목을 맨 반가의 여인’ 이야기다. 1904년 5월 15일 문경에 사는 양반 안도흠이 군수에게 소장을 올렸다. 이웃에 사는 상놈 정이문이 며느리를 겁간하려다가 도주했다는 이유에서다. 안도흠과 아들 안재찬은 정이문 집에 쳐들어가 세간살이를 박살냈지만 정이문을 찾지는 못했다. 그런데 관아로 끌려간 정이문의 조부 정태극의 진술은 사건을 더욱 미궁으로 빠뜨렸다. ‘자신의 손자가 이미 안도흠의 며느리 황 씨와 5년 이상 불륜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며느리 황 씨가 정이문의 집 서까래에 목을 매 자살했다. 검시 결과 늑골과 가슴 부위에서 구타의 흔적인 시반(屍斑)과 목이 졸린 자국인 액흔(縊痕)도 나타났다. 누군가 자살로 위장한 것이다. 군수 김영연은 안재찬을 의심했고, 심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밤에 네 살배기 아들이 우는데도 ‘꼼짝하지 않는 처를 보고는 화가 나 구타하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것이다. 불을 지핀 것은 사실 정태극의 말, 즉 자신의 아내와 상놈이 오랫동안 불륜관계에 있었다는 진술이었다. 아내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 안재찬은 아내를 죽이고 ‘정이문에게 복수한다’는 마음으로 정이문 집 서까래에 매달아 자살로 위장했다. 군수 김영연은 검안 말미에 “인심이 어찌 이렇게도 극악한가!”라고 탄식한다.

의심스러운 살옥(殺獄)사건을 뜻하는 ‘의옥(疑獄)’도 주목할 만하다. 진술 번복이나 용의자를 범인으로 특정할 만한 근거가 사라지면 ‘살인자는 목숨으로 갚는다’는 살인자상명(殺人者償命)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의옥집’이라는 책까지 발행해 지방관들에게 오늘날로 치면 ‘함정수사를 해서라도 사건의 정범을 확정하고 의옥을 막을 의무’를 규정했다. 1902년 11월 3일, 산청군민 김영운이 조카딸이 살해됐다고 관아에 고발장을 냈다. 초검, 복검 결과 모두 자살. 하지만 가족들은 모두 자살일 리 없다며 호소를 멈추지 않았다. 몇 개월이 지나 경상감영의 비밀 훈령에 따라 다시 조사가 시작됐다. 친정아버지는 결혼 당시부터 노름꾼 남편인 권원중의 빚을 대신 갚아줬다고 진술했다. 권원중은 시시때때로 노름빚을 갚아달라고 아내를 핍박했고 심지어 “아내라면 몸을 팔아서라도 남편의 빚을 갚아주어야 한다”며 머리채를 잡고 때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황만으로는 죄를 물을 수 없었다. 그때 사비(私婢) 사월이 “주먹으로 처의 가슴을 때리고 발로 걷어차고… 마끈으로 처의 목을 감아 헛간 서까래에 매달았다”고 진술했다. 놀라운 것은 ‘어미와 함께’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결국 오검관이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하며 끝났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결국 산청 압동은 세도가인 권 씨들의 세상이었다.

이 외에도 조상의 묏자리로 이익을 다투다 벌어진 살인, 죄 없는 사람들에 대한 넘치는 무고(誣告) 끝에 벌어진 살인, 사람을 죽이고도 여우를 때려잡았다고 주장한 양반, 아이를 납치해 간을 빼먹은 나환자, 사위를 살해한 딸을 제 손으로 목 졸라 죽인 친정엄마 등 오늘날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엽기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일들로 가득하다. 저자는 조선시대 살인사건의 저간에서 “개인 간의 갈등만이 아니라 신분 간의 알력, 나아가 향촌 내 여러 집단 간의 다툼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욕망이 배태한 갈등·알력·다툼은 결국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이었던 셈이다. 사실 그 욕망과 탐욕은 오늘 우리 시대의 것이기도 하다. ‘100년 전 살인사건’은 100년 전 조선시대 살인사건을 통해 ‘지금, 여기’의 적나라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책인 셈이다. 400쪽, 2만2000원.

장동석 출판평론가 ‘뉴 필로소서’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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