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약물 처방’부터 내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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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옳다 / 정혜신 지음 / 해냄

인간 존재 본질 마주하는
‘소박한 집밥’같은 심리학

많은 이들이 아프다.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부터, 자존감이 바닥인 사람,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까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로 넘쳐 나고 있다. 이런 현실의 한 가운데에서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적정 심리학이 필요하다.”

자본과 기술이 고도화된 시대, 간단하고 평범한 기술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진짜 필요한 도움을 주는 적정 기술처럼, 적정심리학은 첨단 의학, 특히 약물 중심의 치료에 의존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과 존재의 본질을 마주하는 심리학이다. 그는 ‘소박한 집밥 같은 심리학’이라고 했다.

이 집밥 심리학은 각종 재난 현장으로 달려갔던 저자가 그곳에서 직접 보고 겪은 경험에서 나왔다. 바로 재난 현장에서 의외로 전문가들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재난 현장에는 언제나 각종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들이 모여들지만, 놀랍게도 이들은 곧 현장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 오랜 세월 다양한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증명된 일이다.

처음 전문가들은 전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치유에 나서지만, 곧 피해자들이 이들에게 더 이상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진다. 때로는 거부를 당해서 현장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이 왜 현장에서 실패하는가. 이유는 바로, 의사, 심리치료사 같은 전문가들은 트라우마 현장에서도 상대의 슬픔과 고통을 들기도 전에 약물 처방전부터 꺼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고통을 질병으로 인식해, 약물을 통해 증상을 줄이려 하지만 트라우마 피해자들은 자신을 환자가 아닌 고통 받는 사람으로 봐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렇다고 저자가 전문가들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조현병 등 정신 질환 환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등의 경우 의사의 전문적 진단이 필요하지만 우리가 삶 속에서 겪는 많은 문제가 질병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니, 이는 이에 맞는 치유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 말기암 환자의 공포, 은퇴 후의 무력감, 왕따를 당한 아이의 고통은 우울증이 아니라 우리가 넘어야 할 삶의 고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진료실, 의사 앞으로 데려가기보다는 일종의 ‘심리적인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출발은 “당신의 마음, 그 고통스러운 마음은 옳다”고 ‘공감’해주는 것이다. 상대의 고통에 마음을 포개려는 섬세한 시선과 지지에 바탕을 공감이다.

책은 적정 심리학의 핵심으로 공감의 과녁, 경계 짓기, 공감의 허들 넘기 같은 공감의 기술을 전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무조건 긍정하는 것, 상대를 위한답시고 주는 충조평단(충고, 조언, 평가, 판단)이 공감이라는 착각을 깨라고도 한다. 또 저자는 공감의 과정에서 상대의 마음에 앞서 자신의 상처를 만날 경우 자기 보호가 우선이라고 당부한다.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 사이의 건강한 경계를 세우고 공감을 방해하는 허들을 용감하게 넘어설 때 모두가 공감받는 치유가 이뤄진다고, 진정한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며, 일방적인 것이 아닌 쌍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316쪽, 1만58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