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철밥통 세습’과 正義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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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석 정치부 차장

2018년 국정감사를 지켜보며 선한 정책 목표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상식을 되새기게 된다.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는 공공기관’이라는 거창하고 좋은 목표를 향해 출발한 문재인 정부 공공기관 정책이 채용 비리와 고용 세습 논란으로 위기에 빠졌다. 이번 스캔들은 최악의 일자리 대란 속에 터져 충격이 더 크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로 요약되는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국가 비전이 무색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폭로되는 내용을 보면 이를 과거 정부 때부터 이어져 온 적폐(積弊)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는 말 그대로 오래전부터 쌓인 폐단이지만 최근 국민의 공분을 자아낸 사례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정책이 공공기관 임직원과 노조에 악용되고 있다는 증거다. 임직원 1만7084명 중 1912명(11.2%)이 친인척, 지난 3월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바뀐 1285명 중 112명(8.7%)이 임직원의 친인척이라는 서울교통공사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25일 현재까지 친인척 채용 의혹이 제기된 사람만 20여 개 공공기관에 500명이 넘는다. 이들 전부가 연줄을 타고 올라온 무임승차자는 아닐지언정 ‘현대판 음서제’가 횡행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기엔 충분하다.

이쯤에서 공공부문을 바라보는 문재인 정부의 시각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들과 달리 공공기관을 강도 높은 개혁 대상이 아닌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선도하는 주체로 설정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해 7월 발표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공공기관 관련 내용은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12번째 과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는 공공기관’에 국한됐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단계적 전환, 성과연봉제 폐기, 노동이사제 도입 등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현 정부에서는 공공기관 개혁이 없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주고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일자리를 민간이 아닌 공공부문을 통해 늘리겠다는 발상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공공기관 개혁 없는 공공 일자리 정책이 기득권층의 ‘철밥통’만 보호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정의롭기는커녕 정의에 역행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야당들의 국정조사 요구에 냉담한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여권은 지난 11일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사립유치원 비리 실태를 폭로한 지 채 보름도 되기 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공공기관 채용 비리 및 고용 세습 관련 국정조사에 대해서는 ‘가짜뉴스’ 운운하며 미적거리고 있다. 민주노총의 눈치를 보고 있다거나 대권주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한다는 뒷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공공기관 적폐는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도 지우려 애쓰는 보수 정권 9년의 흔적보다 훨씬 더 뿌리 깊고 청산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스스로 내세운 ‘정의로운 나라’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이제라도 잘못 끼운 단추를 바로 채워야 한다.

greent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