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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8년 10월 26일(金)
인류 진화의 가장 거대한 신비 ‘협력’ 전쟁이 ‘이타적 행동’ 이끌어낸 逆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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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 간 경쟁은 생물학적 능력과 숙련에 따라 좌우되지만 집단 간 경쟁은 협력의 규모에 따라 좌우된다. 사진은 NFL 미식축구 모습으로 스포츠 역시 경쟁을 위해 협력해야 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AP연합뉴스

초협력사회 / 피터 터친 지음, 이경남 옮김, 최정규 감수/생각의힘

全지구적 협력 하는 유일 존재
인간의 협력 규모 갈수록 커져
‘우주정거장 한 곳’건설하려면
300만명이 1년동안 힘합쳐야

낯선 이와 때때로 협력하는 건
강한 집단 승리하는 전쟁 영향
전체 협력 깨는 전쟁狂은 몰락


생명체는 모두 제 유전자의 복제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이기적 유전자’를 타고났다. 하지만 인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러한 생명의 법칙에서 예외인 듯하다. 초사회성(ultrasociety), 즉 “작은 마을에서부터 도시나 국가에 이르기까지, 아니 그 이상 큰 무리를 지어 낯선 사람들과 협력할 줄 아는 능력”이 인류의 본성인 것처럼 보인다.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제공하는 노동력의 크기를 인년이라 하는데, 이를 측정 단위로 삼아 인류 사회의 협력 정도를 표시하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최초의 초거대 건축물인 터키의 괴베클리테페 유적에는 300인년이, 미국의 파버티포인트 구릉 A에는 1000인년이, 이집트 기자의 거대한 피라미드에는 40만 인년이,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에는 10만 인년이, 프랑스 아미앵의 노트르담성당에는 1만5000인년이, 그리고 현재 우주에 있는 국제우주정거장에는 300만 인년이 필요하다. 직선적이지는 않지만, 인류의 역사는 협력의 규모가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쪽으로 진행돼 왔다.

물론, 개미나 꿀벌의 경우에서 보듯, 생명의 역사에서 사회성이 인류의 고유한 속성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생명체의 경우, 협력은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개체들과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 지구적 규모의 협력을 이룩한 것은 현재로서는 인류뿐이다. 인류는 어떻게 만난 일도 없고 평판을 들어본 일도 없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집단을 이루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거대한 협력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초협력사회’에서 미국 코네티컷대학의 생물학자이자 역사학자인 피터 터친은 인류 진화의 가장 커다란 신비, 즉 협력의 비밀을 파헤친다. 현생인류는 약 20만 년 전에 지구에 출현했다. 그리고 인류사의 약 95%에 해당하는 기간에, 인류는 좁은 임시거주지에서 수렵채집인으로 살면서, 생존을 위한 소규모 협력을 지속했을 뿐 핏줄이나 언어가 다른 낯선 인류들과 힘을 합치는 일은 없었다.

초사회성이 나타난 것은 약 1만∼1만2000년 전이다. 괴베클리테페 유적이 이를 증명한다. 거대한 돌기둥을 세워 건축한 이 신전들은 집단거주지 근처가 아니라 외떨어진 언덕에 건설됐다. 유적을 만든 사람들은 광활한 지역에 흩어져 있었는데, 그중에는 100~200㎞나 떨어진 곳도 있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이 모여서 별 쓸모없는 건축물을 세우고,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잔치를 벌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놀랍게도 이들이 건설한 것은 신전이 아니라 공동체, 즉 ‘협력’ 그 자체였다. 필요할 때 서로 힙을 합칠 수 있는 집단임을 주변의 다른 집단에 과시한 것이다.

이유는 전쟁 때문이다. 저자는 ‘집단 간 전쟁’이야말로 인류가 생물학적 한계, 즉 이기적 유전자를 넘어서는 ‘파괴적 창조’를 가져온 문명의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개인 간 경쟁은 생물학적 능력과 숙련에 따라 좌우되지만 집단 간 경쟁은 협력의 규모와 긴밀성에 따라 좌우된다. 집단 내 경쟁에선 이기주의자가 유리하지만, 집단 간 경쟁에선 이타주의 집단이 이기주의 집단을 쓰러뜨리는 것이다. 1만 년 전쯤 인류는 이기주의를 억제하고 협력을 늘려야 하는 진화의 새로운 조건에 맞닥뜨렸다. 집단선택이 확연히 나타난 것이다.

자연 상태에 가까운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개인 간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영구거주지가 만들어지고 노동력이 집약되는 농경사회 이후, 불평등이 생기고 쟁투의 규모가 커지면서 집단 간 경쟁에서 유리한 조건을 이룩하지 않으면 생존이 힘들어진다. 결투의 시대가 저물고 전쟁의 시대가 열리면서,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 할지라도 전쟁에서 패배하면 목숨을 비롯한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이다. 따라서 동원할 수 있는 물리력의 규모를 키워서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생존에 유리해졌다.

이로부터 전쟁의 역설이 나타난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이기적 존재들이 이타적 목표에 최대한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범죄 행위 등 사회적 낭비를 최소화하고 구성원의 힘을 집약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사법적, 문화적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이기적 유전자를 길들여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 가령, 종교를 통해 집단정체성을 부여하고, 관료제를 도입해 동원 체제를 효율화하며, 교육을 통해 문화를 내면화하는 등의 수단이 나타난다. 막대한 자원과 드넓은 영토를 가진 제국과 같은 초사회적 집단이 일단 출현하면, 생존을 위해 주변 경쟁 집단도 비슷한 시스템을 갖추어갈 수밖에 없다. 초협력 사회의 경쟁이 본격화하는 것이다.

주의할 점이 있다. 인류역사의 주요 동인이 전쟁이라 할지라도, 인류가 평화를 통해, 즉 대규모 협력을 통해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구축해 왔음을 놓쳐선 안 된다. 전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쟁광들은 전체의 협력을 깨뜨리는 탓에 결국 패배를 대가로 치를 뿐이다. 전쟁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지만, 인류는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전 지구적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지금까지 전쟁이 인류의 상수였지만, 언젠가 인류가 전쟁을 쓸모없게 만들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것이 인류 진화의 큰 방향이다. 376쪽, 1만8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순천향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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