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使측 방어권 보장 없인 ‘ILO 유보 조항’ 비준 추진 말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여부가 기업 활동에 또 다른 불확실성을 키우는 불씨가 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반대 의견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제출했다. 한국은 ILO 핵심협약 8개 중 노조활동 보장과 관련한 제87, 98호와 강제노동 금지를 규정한 제29, 105호 등 4개 조항의 비준을 유보한 상태다. 노동계는 모든 조항의 비준을 촉구해왔다. 문 대통령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정부는 경사노위를 통해 비준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을 이끌어낸다는 방침이다.

ILO는 노동권 보장을 위해 8개 협약의 비준을 권하지만, 강제할 권리는 없다. 187개 회원국 중 143개국이 모든 조항을 수용한 반면, 미국·일본은 각각 2개·6개만 비준했을 뿐이다. 자국의 특수한 상황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준은 대통령 권한이나, 국회 동의가 필요하고, 국내법과 충돌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핵심협약 87, 98호를 비준하면, 해직 교사의 노조 가입이 허용되면서 전교조 합법화 길이 열린다. 공무원·교사 파업도, 특수고용직 노조 설립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지금도 ‘노조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만큼 어느 나라보다 강성 노조의 위세가 대단하다. 툭하면 생산라인을 세워 임금을 올리고, 고용세습도 서슴지 않는다. 한국에서 노조는 약자가 아니라 권력이 된 지 오래다. ‘노동 존중’을 앞세운 문 정부 출범 후 그 양상은 더 뚜렷해졌다.

경총 등 사용자 측은 협약 비준이 노조의 정치화, 파업의 일상화로 사회 전반의 혼란을 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민노총은 또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한다. 자동차산업이 위기에 빠진 것도 전투적 노동운동의 소산인 고임금·저생산성 구조 탓이다. 문 정부는 노동개혁으로 노조 적폐를 시정하긴커녕 친노(親勞) 정책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비준을 말하기 전에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 최소한 외국 수준으로 사(使)측 방어권부터 보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