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의 동네 집 이야기>요리·식사하고, 책 읽고 모임도 함께… ‘집 밖의 내 집’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후암시장 인근에 있는 ‘후암주방’. 사용자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식탁과 주방을 갖추고 있다. 도시공감협동조합 제공

‘후암주방’ ‘후암서재’

후암동 젊은 건축가들이 모여
오래된 동네에 필요공간 제공
인터넷예약 통해 소수만 이용
無人 운영에 프라이버시 보장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오래된 동네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 오래된 마을에 대한 향수뿐만 아니라 원도심에 위치한 동네는 도시 중심부에 가까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좁은 주방과 낙후된 화장실, 주차공간의 부재 등 지금의 생활환경과 맞지 않은 부분들은 여전히 불만요소다. 원하는 대로 고치며 살 수 있는 집들은 다행이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래된 동네의 낡은 집은 삶의 질 문제로 다가온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시설은 주거지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요즘 짓는 아파트는 단지 내에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서실, 카페, 운동시설 등 주민편의시설을 갖추는 것이 일반화됐다. 심지어는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식당까지 갖춘 아파트도 등장했다. 좀 과하다 싶지만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필요한 시설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파트 단지처럼 사전계획에 따라 준비할 수 없는 기존 주택가에서는 이런 편의시설은 강 건너 남의 이야기이고 편의성의 부재는 맹목적인 아파트 사랑으로 이어진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몇몇 지자체에서는 오래된 마을에 화장실이나 택배보관소 등의 생활편의 시설을 만들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극히 일부다.

오래된 동네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곳이 있다. 후암시장 인근에 위치한 ‘후암주방’과 ‘후암서재’가 바로 그곳이다. 빨간 벽돌에 뾰족한 지붕이 인상적인 ‘후암주방’은 3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지만 여섯 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식탁과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조리대와 전자레인지, 미니오븐 같은 조리기구 등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인터넷예약을 통해 유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 주방이 좁거나 준비물이 많아 망설였던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들과 함께하는 식사와 조리가 가능한 곳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마을의 서재이자 작업실, 사랑방 역할을 하는 ‘후암서재’. 도시공감협동조합 제공

더구나 요즘처럼 프라이버시가 중요하게 생각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집 밖에서 손님 초대는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후암주방’은 무인으로 운영되며 오전, 오후로 나눠 각각 한 팀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내 집처럼 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음식 재료를 직접 준비해야 하는데 인근에 후암시장이 있어 손쉽게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후암주방’에서 골목길을 따라 삼광초등학교 쪽으로 300m가량 걷다 보면 큰 창을 배경으로 ‘후암서재’라고 쓰여 있는 건물을 만나게 된다. ‘후암서재’는 2017년 3월에 문을 연 ‘후암주방’의 동생 격으로 같은 해 12월에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약간의 책과 마을기록물들이 비치돼 있는데 동네주민들의 서재이자 작업실, 사랑방으로 활용된다. 이곳 역시 인터넷예약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단체가 아니라면 하루에 3인 이하로 사용자 수를 한정해 사적인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책을 읽거나 개인적인 업무를 보는 등,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단체 이용자들은 이곳에서 독서모임 같은 개별적인 동아리 활동도 가능하다.

‘후암주방’과 ‘후암서재’는 후암동에 터를 잡고 활동하고 있는 ‘도시공감협동조합’의 젊은 건축가들이 운영하고 있다. 마을 만들기와 도시재생에 관심이 있는 선후배로 이루어진 이들은 2016년, 시대상을 반영한 다양한 주거형태가 남아있는 동네에 매력을 느껴 이곳에 사무실을 냈다. 이들은 자신들이 활동하고 있는 동네에서 마주하는 공간적 편의성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후암주방’과 ‘후암서재’를 만들었다.

그래서 이곳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유공간이지만 개인 활동이 보장되는 내 집 밖의 내 집 같은 공간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느끼는 편의성 때문인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선호되기도 한다. ‘도시공감협동조합’의 젊은 건축가들은 동네의 빈집을 찾아내어 낡은 자재를 떼어내고 페인트칠을 통해 낡은 공간을 매력적인 장소로 변신시켰다. 장소가 변하자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입소문을 통해 이제는 동네의 명소가 됐다. 연내를 목표로 마을 아카이브전시장 개관을 준비 중이며 1인 스파, 코인빨래방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공간들을 하나씩 채워 갈 계획도 가지고 있다.

오래된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단지 오래된 것에 대한 가치부여에 그쳐서는 안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갖춰야 집과 마을로서 자격이 주어진다. ‘후암주방’과 ‘후암서재’는 공간적인 편의성이 떨어지는 오래된 마을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마을의 활력소 역할을 하고 있다. 작지만 이 공간들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이다.

글·사진=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