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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현종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8년 11월 05일(月)
‘막말 북한’ 정색하고 혼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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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리선권, 목구멍 이어 ‘배’막말
미국엔 저자세, 文정부엔 거만
결기 없음 알고 길들이기 전술

徐熙의 당당한 외교 본받아야
다시 부각되는 북한 人權 문제
핵포기·개혁 확인할 가늠자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5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담화문을 통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거친 막말로 비난했다. 최 부상은 “펜스가 북조선이 리비아 모델을 밟을 수 있다느니 뭐니 하고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댔다. 그가 얼마나 아둔한 얼뜨기인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펜스 부통령이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 무아마르 카다피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리비아 모델’처럼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 직후다. 최 부상의 담화를 접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취소를 발표하며 정면으로 대응했고, 이에 놀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계관 부상 명의로 서한을 보내 곧바로 ‘불미스러운 사태’ 운운하며 꼬리를 내렸다.

북한이 그동안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거친 막말 외교로 미국의 기를 죽이려다 되치기를 당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작은 나라 북한의 무례를 바로잡지 않으면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렇게 미국이 회담 취소라는 극약처방을 한 이후 북한은 함부로 미국을 겨냥해 막말을 내뱉지 못한다.

반면에 우리를 향한 북한의 막말은 점점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9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때 특별수행원으로 동행한 대기업 총수들과 옥류관에서 함께 냉면을 먹은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정확한 사실관계가 확인되진 않지만, 어느 대기업 총수가 냉면 사리를 추가하자 리 위원장이 이렇게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북 경협이 대북 제재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보이는데 손님을 불러 놓고 ‘목구멍’ 운운하는 무례가 도를 넘는다.

또, 리 위원장은 10·4 선언 11주년 기념식을 위해 방북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에게 “배 나온 사람한테 예산을 맡기면 안 된다”고 독설을 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우리 측 인사가 리 위원장에게 김 의장을 소개하며 집권당에서 예산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자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김 의장의 속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만약 우리 측이 “배가 더 나온 사람은 인민을 통치할 능력이 없는 것 아니냐”고 되받아쳤다면 북측이 어떻게 대응했을지 궁금하다.

리 위원장이 남북고위급 협상 대표를 맡고 있으면서 파트너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게도 여러 차례 무례한 언사를 한 것을 보면 단순히 스타일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대남 길들이기 전술로밖에 볼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처럼 협상을 깰 결기도 없고, 요구하는 대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북한이 우리의 인내력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모욕을 당하고도 항의 한번 해보지도 않고 되레 ‘농담’ 운운하며 파문을 줄이려 물타기를 하고 있는 여권의 태도를 보면 북한의 전략이 100% 먹히고 있는 셈이다. 지난 1994년 제8차 남북실무접촉 때 북측 대표로 나온 박영수가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하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회담 내용을 공개했고, 김일성은 남측 반발이 크자 형식적으로나마 박영수를 경질한 바 있으나 지금은 꿈쩍도 안 한다.

한국 외교사의 본보기가 되는 고려 성종 때 서희(徐熙)는,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한 거란의 소손녕과의 강화회담에서 군신 간의 예를 요구받자 대등한 예를 행할 것을 주장하고, 소손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숙소로 돌아와 누워버림으로써 협상 초부터 기선을 잡았다. 또, 서경 이북을 거란에 할양할 것과 송과 단교하고 거란에 조빙하라는 소손녕의 주장에 대해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고 여진으로 인해 길이 막혔기 때문에 거란에 조빙하지 못했다는 논리 정연한 답변을 내놓아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정 박 한국석좌는 “북한 비핵화 협상 테이블 위에 인권 문제가 의제로 오른다면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에 관한 태도 변화의 진정성이 더욱 명백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위원장이 진짜 비핵화와 함께 개혁·개방을 향한 의지가 있다면 우리가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피하지 않을 것이다. 막연한 북한의 ‘선의’만 믿을 것이 아니라 의지를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협상의 태도일 것이다. 우리 시대 서희 같은 협상가는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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