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권 쌈짓돈 변질된 남북협력기금, 이대론 안 된다

국회의 내년 예산안 심의가 5일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남북협력기금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과거에도 가끔 문제가 됐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협력 드라이브가 급가속하면서 조성 및 사용의 적정성 여부가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보다 1385억 원 늘어난 1조977억 원을 요청했다. ‘1조 원 돌파’라는 상징성도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평화 예산’이라며 원안 사수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일방적 퍼주기 예산’이라며 대폭 삭감을 내걸고 있다.

이번 예산 심의에서 어떤 결론을 내느냐도 중요하지만, 차제에 남북협력기금 제도 전반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조성이 시작된 1991년에 비해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남북협력기금은 현재 13조9529억원으로 불어났지만, 운영은 주먹구구나 마찬가지다. 통일부가 주관하고 수출입은행이 위탁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권의 쌈짓돈으로 변질됐다. 심의를 맡은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는 대부분 친정부 인사들로 채워졌다. 통일부는 지난 7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보수 명목으로 8600만 원을 협의회에 요청한 뒤 100배가 넘는 97억8000만원을 지출했다.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대표단 지원금, 이산가족 상봉시설 개·보수 및 행사 비용 지출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1년 법원이 이유 없다는 판결을 내렸는데도, 지난해 경협 기업들의 피해를 보전한다고 1228억 원을 지출한 것도 부적절한 기금 사용이다.

남북협력기금은 대부분 정부 내부 수입으로 조성된다. 정부는 기금 사용 내역을 국회에 보고한다고 하지만, 지출이 국회 동의 사항이 아니어서 무성의하다. 예산에 준해 국회가 심의·의결권을 갖는 등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계속 조성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할 때도 됐다. 올해 지출 현황을 보면 대북 구호지원(4485억 원), 민생협력지원(2316억), 무상 경협기반(1389억) 등 시급하거나 비공개리에 추진할 사업은 보이지 않는다. 공식 예산으로 편성하거나, 불가피한 최소한만 기금이나 예비비에서 지출하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