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모의 세종이 펼친 ‘진짜 정치’>21년간 經筵 통해 국정 토론…건강악화에 중단 ‘흠이라면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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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잘못한 일은 없습니까? 조선 시대를 통째로 부정하려 드는 일부 몰역사적인 사람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다. 세종의 뛰어남을 인정하고 또 배우려고 하는 분들도 많이 궁금해하는 내용이다. 세종 역시 인간인지라 실수가 있었을 것인데, 왜 좋은 점만 이야기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지금까지 거론되는 세종 정치의 실책들로는 ① 말년의 척불 논쟁으로 인한 시간과 체력 소모 ② 효과적이지 못했던 전위(傳位) 리더십 ③ 재위 전반부 화폐개혁 강행 및 좌절 등이 있다. 혹자는 ‘노비제도’나 ‘기생제도’ 또는 ‘사대외교’를 들어 세종 정치를 비판하나, 그 주장은 사실에 기반하지 않았거나 지나치게 편협한 해석이라 거론할 가치가 없다.

역사 속 인물을 평가할 때는 그가 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았던 일(不爲)’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할 수 없었던 영역의 일(不能)’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이며 폭력이다. 비유컨대 그것은 훗날 어떤 생선 권리 옹호론자에 의해 ‘당신들은 생선을 아무 생각 없이 잡아먹은 야만인’이라고 매도당하는 것과 비슷하다.

‘불위(不爲)’의 측면에서 볼 때, 그리고 그동안 한 번도 제기된 적이 없었던 세종이 저지른 큰 실책의 하나는 경연 중단이다. 그는 재위 21년이 되는 1439년 3월부터 경연을 더 이상 열지 않았다. 세종은 즉위한 지 두 달째인 1418년 음력 10월 7일(양력으로 11월 4일)에 첫 경연을 열었다. 세미나식 어전회의인 경연을 그는 무려 1898회(월 5회)나 개최했다. 경연을 국정 토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한 왕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재위 21년 윤 2월 16일 “경연에 납시었다(御經筵)”는 기사를 끝으로, 사망할 때까지 경연에 대한 기사는 세종실록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세종이 이즈음 경연을 중단한 이유는 자신의 건강 악화와 세자에게 국정 일반을 위임하려는 의지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결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우선 경연 중단은 ‘말과 일을 엮는 경세(經世)의 공간’을 대폭 축소시켰다. 세종 정치에서 경연장은 집현전 학사 등 젊은 인재들의 고전에 기반한 창의적 아이디어와 실제 나랏일의 책임을 맡은 재상들의 경륜, 그리고 국왕의 결정력이 용광로처럼 융화·결합되는 곳이었다. 세종은 누구보다도 그 효과를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그러하도록 회의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그런데 그런 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그 결과, 이른바 ‘집현좌파’로 불리는, 원리주의적이고 왕의 정책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다수 등장했다. 훈민정음 창제 반대 상소에 참여한 최만리,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그리고 청계천 맑은 물 프로젝트에 반대한 어효첨, 이계전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또한 젊은 인재들과의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던 황희, 허조, 맹사성 등 균형감 뛰어난 재상들이 물러나거나 사망하면서, 하연 같은 사욕이 앞서는 인물이 재상의 자리에 올라 정국을 주도했다.

어떤 목표에 도달한 다음 자신을 성공에 이르게 한 그 장점을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많은 정치가나 기업인이 그러하고, 고대 페르시아나 세종도 그러했다. 물론 그 장점이 기술이나 특정 인물일 경우는 적절한 교체를 할 수도 있다. ‘성공의 역설’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연회의처럼 세종 정치의 엔진에 해당하는 것을 마땅한 대안 없이 중단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실책이었다.

그런데 ‘천하의 세종대왕도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건 왜일까.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