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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 게재 일자 : 2018년 11월 07일(水)
영감의 느린 파리채에 깔린 금파리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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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규·구자명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14) 빠름보다 느리지 않은 느림

물린 밥상 모서리 앉은 금파리
반쯤 먹은 꽁치조림·흘린 밥알
앞발 모아 싹싹 빌며 입맛 다셔

어느새 꽁치 대가리서 식도경
영감의 눈, 순간 매섭게 빛나고
손 슬그머니 뻗어 파리채 잡아

이리저리 어지럽게 돌아다니며
휘두르는 영감 손 놀리며 비웃다
그 웃음은‘틱’소리와 끝났다


윙~

금속성 광채를 빛내며 금방 물린 밥상 모서리에 날아와 앉은 금파리.

반쯤 쪼아 파먹은 꽁치조림, 김치, 그릇 바닥에 몇 숟가락 남은 된장국. 흘린 밥알들, 그리고 몇 모금 남은 숭늉.

끄윽~

영감의 비린 트림이 밥상 위를 게으르게 덮는다. 금파리가 앞발로 머리를 비빈다.

닦아낸다.

털어낸다.

영감은 금파리의 비비는 짓을 보다가 짜장면을 생각했다. 파리채 옆에 놓인 동네 중국집에서 광고용으로 준 이쑤시개 통에서 이쑤시개 하나를 뽑아 들었다.

쯥쯥쯥쯥~

벌어진 이빨 틈새를 쑤셔대다가 이름 끝에 ‘자’가 들어 있는 옛 계집이 생각났다. 명자? 숙자? 혜자? 거의 희미해진 기억의 쪼가리를 아예 털어 낼 심산으로 도리질을 친다. 사추리가 근질하여 손을 넣어 북북 긁다가 두루주머니를 만져보았다. 그저 별일 없어 체머리를 흔드는데 금파리가 머리를 감싸고 또 비벼댄다. 영감의 도리질과 흔드는 체머리에 머리카락 끝에 아슬하게 붙어있던 파리 크기만 한 비듬 한 부스러기가 밥상 위에 떨어졌다. 흠칫 놀란 금파리가 몸을 빼어 도사리며 영감을 째려본다. 영감도 금파리를 노려본다. 어디선가 흘러온 가벼운 바람에 꽁치조림의 비린내가 흩어지자 금파리는 문득 자세를 바꿔 영감을 향해 앞발을 모아 싹싹 빈다.

금파리를 노려보던 영감의 회갈색 눈에 서린 기운이 게게 풀리며 야비한 웃음기가 얕은 주름골로 입가에 잡힌다. 금파리는 비는 짓을 멈추고 매우 조심스레 영감이 흘린 밥알에 다가간다. 주둥이를 디밀며 밥알의 맛을 보더니 자리를 옮겨 숟가락에 묻어 있는 된장국을 다신다. 금파리가 잠시 곁눈질로 영감을 살피더니 이내 날아올라 꽁치조림이 담겨 있는 냄비의 손잡이에 앉았다. 그리고 또 두 발을 모아들고 영감을 향해 열심히 빈다. 영감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얼굴의 표정도 뭔가 단호하다. 영감은 고개를 저으면서 생각했다. 꽁치조림의 양념장에 따뜻한 밥을 비벼 먹는 것이 얼마나 맛이 좋은지. 금파리 따위가 그걸 알 턱이 없다. 왜냐하면 영감은 그런 비빔밥은 설거지도 필요 없을 정도로 밥알 한 톨 남김없이 싹싹 핥아먹기 때문이다. 금파리는 쉬지 않고 앞발을 모아 빈다. 그 꼴을 빙긋 웃으며 보던 영감의 재미는 곧 사그라지고 졸음이 밀려온다. 긴 하품을 하느라 입속에 고였던 침이 흘러나왔다. 영감이 손등으로 침을 썩 문지르는데 게슴츠레한 눈에 잡혔던 금파리가 보이질 않는다. 두 눈을 크게 뜨고 금파리가 앉았던 꽁치조림 냄비를 잘 살펴보니 녀석은 어느새 꽁치 대가리에 앉아 식도경(食道境)에 흠뻑 빠져 있었다. 영감의 눈이 순간 매섭게 빛나고 앙다문 입의 입술이 씰룩거린다. 손을 슬그머니 뻗어 파리채를 잡았다. 서늘한 고요가 시간의 흐름을 붙잡았다. 시간이 얼굴을 찌푸린다. 낯선 낌새를 챈 금파리가 꽁치 대가리에서 주둥이를 떼고 주위를 살피다 파리채를 거머쥔 영감을 봤다. 금파리가 두 눈에 힘을 주며 영감을 똑바로 마주하며 째려본다. 영감의 팔이 순간 굳어지며 허공에 멈춘다. 금파리가 긴장된 걸음으로 조금씩 옆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보다 느린 속도로 파리채도 금파리의 궤적을 따른다. 금파리가 조금씩 더 빠르게 움직이니 파리채도 그를 쫓아 빠르게 따르자 금파리는 맹렬한 속도로 이리저리 어지럽게 돌아다니며 뒤따르는 느린 파리채를 놀렸다. 활발한 운동 뒤에 숨을 고르고 여유 있는 식사를 하는 달콤한 기억이 아슴하게 떠오른 금파리는 더욱 열심히 자리를 옮기며 영감의 파리채를 지휘했다.

영감의 팔이 직선의 운동을 못 하며 후들거린다. 그리고 더는 못 견디겠는지 시나브로 허공을 미끄러져 바닥으로 내려온다. 금파리의 날갯짓 소리인지 웃음소리인지 모를 우렁찬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웃음소리는 ‘틱’하는 소리와 함께 끝났다. 아주 느리게 사선으로 추락하던 영감의 파리채가 금파리의 소리를 그치게 했다. 오직 금파리의 늠름한 소리만. 금파리의 배가 터지며 쌀 같은 흰 알들이 비어져 밥상에 깔렸다. 금파리는 중얼거리며 숨을 멈춘다. “우리 파리가 사람의 수보다 몇백 배나 많으며 그들이 생기기도 훨씬 전에 우리가 있었던 걸 알까?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

글·그림 = 김의규

한국미니픽션작가회

초대회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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