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즉 ‘불위(不爲)’의 측면에서 볼 때 세종의 또 다른 실책은 이슬람인(회회인·回回人)의 새해 인사를 금지시킨 일이다. 실록을 보면 세종 초반까지만 해도 왜인과 야인, 그리고 귀화한 회회인 등이 모두 조하(朝賀)에 참여해서 조선의 국왕께 새해 인사를 올리고 있다.
조선 정부는 태종 시대 이후 인근의 다른 종족들이 우리나라에 건너와서 살고 싶어 하면 적극 포용하는 정책을 취했다. 특히 세종은 “귀화한 왜인들도 곧 우리나라 백성”이라 하여 투화(投化)해온 그들에게 집을 지어 주고 우리나라 사람들과 혼인해 살게 했다. 공을 세웠거나 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벼슬을 주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여진족이나 일본인, 그리고 남만인(南蠻人)이라 불리는 동남아 지역 사람들이 집단으로 강과 바다를 건너오곤 했다.
1427년(세종 9년) 4월 4일 예조는 의외의 보고를 올렸다. “회회교도는 옷과 모자(衣冠)가 보통과 달라서 사람들이 모두 우리 백성이 아니라고 하며(非我族類) 그들과 더불어 혼인하기를 꺼린다”는 게 보고의 내용이었다. 조선 귀화 후에도 고유의 의복과 종교의식을 고수하는 이슬람인들 때문에 조정의 동화정책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예조는 더 나아가 그들의 종교의식, 즉 새해 첫날의 대조회(大朝會) 때 이슬람 방식의 기도(祝頌之禮)를 금지하자고 제안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뜻밖에도 세종은 그 제안을 모두 “수용”했다. 그동안 외교 문제에 대해서는 왕 자신이 일일이 챙기던 그가 이 문제를 범연히 수용한 것이다. 이후로 회회인의 조회 참여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가장 큰 행사인 설날의 종교의식을 금지당한 이후 회회교도는 물론이고 그들과 함께 온 서역의 상인들도 발길이 뜸해졌다.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와의 문물교류는 물론, 지식교환도 차츰 줄어들었다.
세종 말년에 대두하는 지식인들의 ‘쇄국적’ 사고방식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446년(세종 28년) 5월 집현전 출신 이선로는 그동안의 교린정책을 끊고 “일찍이 한나라가 했던 것처럼 국경을 닫고(閉關) 수어(守禦)의 방비를 엄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정이 있는 물건으로 오랑캐들의 한없는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으며, 위태하고 약할 때는 오는 것을 거절해서 강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拒其來而示强)”는 게 그의 쇄국 주장 이유였다.
흥미롭게도 이 주장에는 전형적인 ‘쇄국의 논리’가 들어 있다. 경제적 이유와 안보상의 필요를 들어 대외 교류를 차단해야 한다는 논리는 17세기의 병자호란 때, 그리고 19세기의 개항기 때도 똑같이 등장했다. 이선로의 주장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에 귀화한 자가 심히 많은데, 한나라처럼 국경을 닫아걸 수는 없다”고 재상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시간적 격차가 있지만, 나는 세종 정부의 회회인 조회 배제 결정으로 싹튼 쇄국의 사고방식이 이선로의 주장으로 나타났고, 이후 몇 차례 큰 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강화됐다고 본다. 만약 세종이 1427년에 예조의 제안을 거절했더라면, 그래서 중앙아시아·서아시아와의 교류를 지속시켰더라면 어찌 됐을까? 세종의 그 수용이 일종의 나비효과를 불러왔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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