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 모아라! 訪北 동참하라!”… 기업에 짐만 되는 정치권

대기업 15곳 사장급들 불러
농해수위·정부, 모금 독려해
기업측엔 사실상 ‘강요’ 자리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위는
전경련 방북단 100여명 요청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 될라
기업들 난처한 입장에 처해

정치권과 정부가 재계에 특정 기금 조성을 독려하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도 동반 방북을 제안하는 등 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재계는 난처한 입장이고, 정치권 내부에서도 쓴소리가 나온다.

정부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15일 오전 15개 대기업 사장급 인사들을 국회로 불러 간담회를 갖고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마련을 독려했다. 이 자리에는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참석했고, 국회 농해수위에서도 황주홍 위원장과 위원들이 참석했다. 재계에선 삼성·현대자동차·SK·LG그룹 등의 관계자들이 나왔다.

이날 간담회는 공식적으로 정부와 국회가 재계의 기금 마련을 독려하는 자리지만, 재계에선 사실상 모금을 강요하는 자리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별로 이미 농어촌 마을과 자매결연을 하는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데 별도 기금을 더 내라는 것이어서 입장이 곤란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농해수위 위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기업이 돈을 댔다가 문제가 되지 않았느냐”며 “기업들이 돈을 내면서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느냐”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가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다음 달 방북에 참여할 대·중소기업 등 경제계 인사 100여 명을 구성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더욱이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풀리지 않은 상황이어서, 기업들은 섣불리 대북사업에 나섰다가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 10월 23일 있었던 평양 남북정상회담 뒤풀이 모임에 재계 총수들이 대부분 불참한 것도 이런 부담감을 반영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전경련은 지난 12일 민주당으로부터 공문을 받아 현재 내부적으로 방북 희망 기업을 조사 중인데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방북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경우 미국에 생산 공장이 많은데 방북했다가 자칫 제재 대상이 되면 큰 시장을 잃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며 “정부나 정치권에서 압박하기 이전에 기업이 자발적으로 북한에 갈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