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가장 큰 장애물은…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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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푸른숲

‘형제’‘허삼관매혈기’ 쓴 위화
고전 읽으며 작가에의 꿈 키워

글 안써질땐 책 속에서 길 찾아
“훌륭한 작가, 훌륭한 독자여야”

‘읽고 쓰는 삶’ 강연 내용 묶어
“진리 추구하는 자세 포기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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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여러 작가가 글 쓰는 스스로의 운명을 ‘감옥’에 비유하곤 한다. 언뜻 생각나는 사람은 조정래와 황석영.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에 평생을 바친 조정래는 글감옥이 “황홀한” 경험이었다고 고백했다. 황석영은 물리적 감옥 경험도 그렇지만, “시간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은 물론 “언어의 감옥”에 갇혀 산 평생을 수인(囚人)에 비유했다.

‘형제’ ‘인생’ ‘허삼관 매혈기’ 등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사랑받는 위화(余華·사진)도 황홀한 글감옥의 수인을 자처했다. 자신의 읽고 쓰는 삶에 대해 전 세계 곳곳에서 강연한 내용을 한데 엮은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을 통해서다. 위화는 상하이(上海)에서 행한 강연을 “훌륭한 작가는 무엇보다도 먼저 훌륭한 독자여야 한다”는 다소 평범한 말로 시작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문학잡지를 즐겨 읽었다. 하지만 ‘강철군화’의 작가 잭 런던이 작가가 되려는 젊은이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문학잡지가 아닌 시에 마음을 주었다. 잭 런던은 젊은 작가 지망생에게 “바이런의 시를 한 행 읽는 것이 문학잡지 100권 읽는 것보다 낫다”는 글을 보냈다. 위화가 덧붙인다. “아무리 뛰어난 문학잡지라 해도, 그 잡지에 발표된 작품 가운데 50년, 100년 뒤에도 여전히 읽힐 작품은 얼마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지요.” 대신 “세계적인 문학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전쟁과 평화’는 물론 루쉰(魯迅)의 작품들 대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페르귄트’ ‘설국’ 등이 그 무렵 위화의 마음을 빼앗은 작품들이다.

글쓰기 감옥에 갇혔으니 글만 쓰면 되련만,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녹록지 않다. 위화는 ‘소설가의 장애물’이라는 주제로 베이징(北京)에서 행한 강연에서 자신이 만났던 장애물을 속속 풀어낸다. 가장 큰 장애물은 “한자리에 차분히 앉아서 글을 쓰는 것”이다. 작가 지망생들의 단골 질문 “어떻게 해야 작가가 될 수 있느냐?”는 말에 그는 늘 “쓰세요”라고 대답한단다.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지만, 한자리에 앉아서 쓰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는 말은 풍문이 아니라 진리인 셈이다.

흥미로운 건,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피할 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화 부분을 매끄럽게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심리묘사가 중구난방일 때는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와시’가 찾아왔다. 쓰기는 읽기에서 나온다는 풍문 역시 적확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소설가에게는 장애물이 매우 중요하다”고 위화는 거듭 말한다. 위대한 작가들은 언제든 장애물을 피하지 않고, 심지어 “스스로 만들기도” 한다. “기꺼이 앞으로” 나아가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위화는 작가 지망생은 물론 어떤 글이든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진리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지 말 것”을 권한다. 문학을 비롯한 당대의 모든 예술은 “인간관계나 심미적 취향” 같은 것들의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세상이라는 무대에 펼쳐지기 때문일 텐데, 그 방해를 두려워해서는 “진리에 대한 추구”를 이룰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물론 “진리는 나의 생각도 … 유명 인사들의 명언도 아니고 어떤 사상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찾기 어려울 수는 있다. 그럼에도 진리는 “아주 단순한 존재”이며 “우리가 찾아야만 모습을 드러”낸다. 문학은 답을 보여주지 않되, 무수히 많은 길 중 하나를 보여주는 장치라고 그는 생각하는 듯하다.

책에서 위화가 가장 많이 언급한 작가는 아마도 루쉰인 듯싶다. 그는 루쉰의 작품 속에서 성장했다고 고백하는데, 그럴 것이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과 산문, 시가 전부 루쉰 아니면 마오쩌둥(毛澤東)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 ‘광인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렇지 않다면 자오 씨네 집 개가 왜 나를 쳐다보겠어?”라는 한 문장으로 한 사람을 광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광인의 정신 상태를 표현하고자 “그 인물이 두서없는 말을 하게 하거나 중간에 문장부호를 전혀 넣지 않는 방식을 쓰곤” 하는데, 정작 인간의 심리를 정확히 간파한 작가는 “그들의 말에 담긴 의미를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루쉰이나 셰익스피어 같은 문호들의 작품 속 광인들은 “아주 조리 있고 분명하게 말할 줄” 안다.

위화가 돌아왔으되, 소설이 아니라 실망스러운 독자도 있겠다. 하지만 읽고 쓰는 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불어 그의 소설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흡족할 만한 책이니 안심하셔도 좋다. 황홀한 글감옥의 수인 위화는 그 안에서 “자유 증서” 한 장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그 자유 증서가 무엇인지 확인해보시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큰 즐거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384쪽, 1만4500원.

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