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라운드 前 스트레칭 20분 또는 온수 샤워가 최상의 부상 예방법”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경석 원장이 지난 9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 88병원 옥상에 마련된 휴게정원에서 골프채로 앉아서도 할 수 있는 스트레칭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이경석 88병원 원장

캐디 따라 5분 몸풀기는 불충분
골프는 한 방향으로 힘 쓰는 운동
곧은 척추·좌우 근육 밸런스 중요

3년째 하나銀챔피언십 지정병원
의료진 12 ~ 15명 대회장 상주
세계적 선수들 치료 자부심 커
지난해 단골 고진영 우승땐 보람
장하나도 도수 치료차 자주 방문

이경석(44) 88병원 원장은 라운드 전 스트레칭을 20분만 해도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9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 88병원에서 이 원장을 만났다. 때마침 인근 대학병원에서 이송해 온 응급환자 뇌수술 때문에 약속보다 1시간을 넘겨서야 이 원장이 수술실에서 나와 원장실로 돌아왔다.

평소 스포츠를 좋아했던 이 원장은 지난 10월 인천 스카이72골프장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공식지정병원으로 3년째 참가했다. 대회 1주일 동안 12∼15명의 병원 베테랑 의료진을 대회장에 상주시켜 왔다. 이 원장은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을 포기한 경우를 많이 봐 왔기에 대회 주최 측에서 제안이 오자 선뜻 응했다고 했다. 직원들에겐 신생 병원으로서 세계적인 골프선수를 치료한다는 자부심을 심어줬다고 믿는다.

보람도 있었다. 고진영이 지난해 대회 기간 내내 진료소를 단골로 찾더니 우승까지 했다. 고진영은 발톱이 살을 파고드는 ‘내성 발톱’을 갖고도 잇따른 출전으로 염증이 심해져 절룩거리며 진료소를 찾았다. 의료진이 출전을 만류했지만, 고진영은 매일 응급처치를 받으며 대회에 나섰다. 소독약까지 챙겨가 숙소에서 남몰래 치료하며 우승을 차지한 고진영의 ‘억척 근성’에 의료진도 혀를 내둘렀다. 장하나는 도수 치료를 받으러 진료소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이 원장은 “골프선수는 근육 사용량이 많아 대회 시즌이라도 최소 도수치료 정도는 받아야 꾸준한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특히 “주말골퍼의 경우 모든 부상의 70% 이상은 스트레칭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긴다”면서 “캐디 시범으로 5분 남짓하는 스트레칭만으로는 부족하고 라운드 전 최소 20분은 몸을 풀어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라운드 전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것도 최상의 부상예방법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2007년 병원 전문의로 근무할 때 선배 권유로 골프를 접했다. 함께 일하던 선배가 연습장 가는 길에 골프숍으로 그를 데려가 골프채부터 사라고 권했다. 이왕 사는 거 좋은 것을 사야 한다는 선배의 조언에 300만 원을 주고 미즈노 풀세트부터 샀다. 당시 월급을 타던 신분이어서 카드 할부로 끊었다. 이렇게 포장지를 뜯으며 시작한 골프는 3개월을 매일 연습했고 레슨도 열심히 받았다. ‘몰입형’ 성격 탓에 처음 1년은 골프장에 나가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8홀을 다 돌았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아직 싱글패 한번 받지 못했다. 병원 개업 이후 바빴던 탓도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골프가 갈수록 어렵게 다가왔던 것. 강원 춘천 라데나골프장에서 몇 해 전 84타를 기록한 게 베스트 스코어다. 하지만 이 원장은 요즘 한 달 만에 골프채를 잡아도 80대 스코어 진입은 무난한 편이라고. 얼마 전 한 학회 모임에서 파 4홀에서 칩인으로 이글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원장의 비거리는 생각보다 짧은 편이다. 잘 맞아야 200m 정도. 이 원장은 골프를 치다 잘못된 스윙 습관으로 척추를 다친 환자를 많이 봐왔기에 척추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팔로만 스윙을 한 탓이다. 즉 척추를 많이 쓰는 ‘코어 스윙’을 못하니 회전력을 이용하지 못한 것. 비기너 시절엔 거리 욕심을 내다가 공이 좌우로 날아다녔고 무엇보다 허리 통증이 찾아왔다. 그래서 거리보다는 타수를 지키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드라이버 대신 우드나 롱아이언으로 티 샷을 많이 하는 것도 이젠 몸에 뱄다.

이 원장은 “우리 몸은 하나의 축으로 이뤄지고 양쪽으로 근육이 텐트를 치듯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골프는 한 방향으로만 근육을 쓰다 보니 좌우 불균형을 초래한다”면서 “골퍼라면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척추 상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척추를 곧바로 세우고 양쪽 근육을 늘리면 비거리와 방향성도 좋아진다”며 “프로선수들이 자주 하는 반대 스윙도 밸런스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이 원장이 5년 전 면목동에 병원을 내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만류했지만, 자신이 있었다. 신설 병원은 대개 거액의 홍보비를 쏟아붓거나 스타 의사를 영입하는 것으로 출발하지만, 그는 역발상으로 환자들의 불만사항 원인부터 살폈다. 대부분 환자들이 처음 대면하는 직원의 불친절에 거부감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가장 많이 쓰는 홍보비 대신 그 비용으로 직원 복리후생을 강화했다. 직원 구내식당 메뉴의 질부터 높였고, 주차요원이나 청소인력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병원 실내 분위기도 카페처럼 바꿨다. 직원 이직률도 낮아지고 ‘친절한 병원’이 되자 환자가 늘었다. 수익률도 개선돼 병원 개원으로 차입한 외부 빚을 5년도 채 안 돼 모두 갚았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이 원장은 대학병원조차도 꺼리는 뇌수술을 직접 한다. 인근 대학병원에서 손이 모자라는 환자까지 보내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 원장은 월 250건 정도 수술이 이뤄진다고 귀띔했다. 수술실 운영은 중환자실과 고가의 의료장비, 24시간 의료진이 상주해야 하기에 병원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이 원장은 “사실 수술을 안 하면 돈은 더 벌 수 있지만, 건강을 회복한 환자의 환한 얼굴을 보는 것도 의사로서 큰 보람”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팔팔하게 살아보자’는 취지에서 이름 지었고 지금은 ‘팔팔한 내 척추 88세까지’를 병원 모토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