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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 게재 일자 : 2018년 11월 19일(月)
나혜석 세계일주 중 산세바스티안서 ‘스페인 해수욕장’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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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해수욕장, 유화, 32.5×43㎝, 1928

바다풍경 배경 작품 남겨
빠른 필치로 현장감 담아


우리가 최초라는 단어를 어떤 사람의 이름이나 일에 붙이는 이유는 누구도 행하지 못한 일을 두려움 없이 앞장서서 해냈다는 존경의 표시라 할 것이다. 나혜석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결혼과 이혼 그리고 낭인처럼 떠돌다 객사에 가까운 죽음 등등 그의 명성은 최초에, 비극적 스토리 구조까지 얹혀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여기에 여성으로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나혜석의 행적은 지금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화가로서의 삶은 화려했던 개인전과 입상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작이라고 확정할 만한 작품이 분명하게 특정되지 못한 채여서 여전히 화가로서의 평가를 유보당하고 있다. 내가 스페인의 산세바스티안을 찾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나혜석의 작품으로 전하는 것 중 스페인의 바다 풍경을 그린 ‘스페인항구’ ‘스페인국경’ ‘스페인 해수욕장’ 등 3점이 있다. 이 기회에 한 점이라도 그의 진작으로 확정해 기준작으로 삼고 싶었다. 일본의 외교관으로 만주 안동현의 부영사로 봉직했던 남편 김우영(1886~1958)은 임기를 마치고 세계 일주라는 포상을 받았다. 그는 아내 나혜석과 함께 1927년 부산을 출발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에 도착한 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지를 돌아보고 대서양을 건넜다. 뉴욕에 도착해 미대륙을 횡단, 샌프란시스코에 이르렀고 하와이를 거쳐 일본 요코하마(橫濱)를 경유해 1929년 3월, 1년 9개월 만에 부산에 돌아왔다. 나혜석은 자신의 세계 일주기를 ‘삼천리’ ‘중앙’ 등의 잡지에 총 21편을 남겼다.

이를 토대로 그의 스페인에서의 행적을 재구성하면 “8월 25일 9시에 파리를 떠나 스페인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즉 8월 26일 9시에 산세바스티안에 도착했다. 시가지 중에 시설이 있어 굉장했다. 다마루나(타마리즈의 오기)라는 나무가 인상적이었으며 당일 투우장을 방문했고, 다음 날인 8월 27일 오전에 해수욕을 하고 비가 와 방에서 지내다 저녁 9시에 수도인 마드리드로 떠났다.” 따라서 산세바스티안에서 묵은 것은 1박 2일이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매우 더디게 마르는 유화 3∼4점을 완성한다는 것은 무리다. 물론 스케치를 했다가 나중에 시간이 날 때 아틀리에에서 그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스페인을 그린 그림 중 모두 바다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산세바스티안에서 그린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3점이 모두 화풍이나 필치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이미 거의 한 세기 전에 그려진 그림이지만 유럽의 경우 도시가 큰 변화가 없는 만큼 책상에 앉아 고민하느니 현장에 가서 직접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짐을 꾸렸다. 이렇게 찾은 산세바스티안은 미식의 도시이자 휴양도시였다. 듣던 대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프린트한 그림을 들고 플라야 데 라 콘차(Playa de la Concha) 해변을 걷다가 나혜석이 파리에서 만난 애인 최린(1878∼1958)과 함께 묵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마르 궁전(Palacio de Miramar) 앞마당에 서니 확연하게 건너편 구도심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림의 왼쪽 끝에 그려진 시청사의 쌍둥이 종탑과 뒤편 산타마리아 성당의 종탑이 그림과 일치했다. 뒷산의 절개지까지 확연하게 그림과 풍경이 일치했다. 상당히 빠른 필치로 그려진 ‘스페인 해수욕장’은 현장감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스페인국경’과 ‘스페인항구’는 산세바스티안의 지형이나 해변의 구조상 이곳에서 그렸다고 특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90년 전 나혜석이 호텔 창으로 내다보며 그림을 그렸을 곳을 확인했지만 왠지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남존여비의 봉건적 사고가 팽배했던 그 시절, 나혜석은 왜 17살이나 많은 최린에게 끌렸을까? 파국이 확실한 선택을 왜 했을까? 결국 최린 때문에 이혼당하고 최린에게도 버림받았지만 그는 시대를 거스르듯 당당했다. 이혼고백서를 발표하고 최린에게 정조 유린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투’의 선구. 하지만 그녀는 결국 세상으로부터 따돌림당해 수덕사와 해인사 등지를 전전하다 1948년 52세의 나이로 행려병자 무료 병동에서 숨을 거두었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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