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에세이>날카로운 線맛… 살아있는 版맛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지욱, 풍경, 60×45㎝, 에칭, 2015

판화와 인쇄술은 기술적으로 한 뿌리다. 볼록판화와 활판인쇄, 평판화와 옵셋 인쇄는 원리적으로 하나다. 하지만 인쇄술이 상업성과 생산성 등에 역점을 두어 산업화·기계화를 이룬 반면, 판화는 심미적인 표현과 질적 완성을 위해 기꺼이 수동을 고수하고 있다.

기술 복제가 가공할 수준에 이르게 된 오늘날 판화의 복수성이 전처럼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하지만 판화에는 여느 회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미와 매력이 넘친다. 유형이 다양해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오목판화인 에칭의 경우만도 그렇다. 정교하면서도 날카로운 선 맛, 거기에 송진을 이용한 그러데이션 효과는 정갈하고도 감칠맛이 난다. 여운이나 은유적인 분위기를 중시하는 우리의 미감과도 잘 맞는다.

판화가 정지욱의 화면에서 보듯, 눈앞의 풍경을 담담하고 그윽하며 운치 있게 담아내는 데서 에칭 판화의 맛이 음미된다. 이 맛 하나를 위해 작가는 복잡한 과정들을 묵묵히 수행해낸다. 그러면서도 기계의 느낌보다는, 손맛과 판 맛이 살아 있어 화면은 더욱 생기를 띤다.

이재언 미술평론가·인천 아트플랫폼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