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탄핵 촉구안’ 파장>“여론 거론한건 ‘정치행위’ 자인…모든 판사에 ‘의견’ 물어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묵묵부답 김명수 대법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판사 탄핵 추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 없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평소와 달리 법원 직원들이 대법원장 옆에 서서 취재진의 접근을 막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정치판사들이 권한넘은 행동
삼권분립 원칙 훼손” 비판도

현장발의 알려진 뒤 4일만에
표결 이뤄져 의견수렴 불충분
법관회의 대표성에 의문 제기

“대표에 표결에대한 자유위임”
회의석상 발언에 내부 분노도

‘사법부가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에까지 스스로를 갖다 바쳤다.’

20일 법원 안팎에서 터져 나온 탄식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전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동료 법관들에 대한 탄핵소추 절차를 검토해달라는 의견을 국회에 표명한 데 대한 반응이다. 탄핵 검토 의안은 전체 법관대표 105명 가운데 찬성 53표를 얻어 1표 차로 가까스로 통과됐다. 이를 놓고, 법원 내부에서는 “정치판사들이 검찰에 이어 정치권에까지 사법부를 제물로 갖다 바친 셈”이라는 비판과 함께 “전체 판사 3000명을 대상으로 전자투표를 실시해 정확한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관회의에서 동료 탄핵을 찬성한 법관대표들의 주된 논거는 ‘국민이 원한다’는 여론이었다. 이에 대해 A 판사는 “여론을 들먹이는 것은 스스로 정치 행위를 했다고 자인한 것”이라며 “사법부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정치의 장에 스스로 들어섰다”고 일갈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헌법상 법관 탄핵은 입법부가 사법부를 견제하라고 둔 장치지, 사법부가 입법부에 견제해달라고 요청하도록 설치한 조항이 아니다”라면서 “정치판사들이 사법 권한을 넘어선 행위를 저질러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형사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미리 정치적으로 단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법관들 스스로가 무죄 추정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지어 법관회의장에서 탄핵 찬성 측 법관대표들은 “재판 독립 침해 행위는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는 유죄 판단을 받을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에 탄핵이라도 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이와 관련, B 판사는 “판사들이 법리에 따른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을 내리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를 계기로 법관회의의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특히 청주지방법원 법관대표가 “소속 법원 법관들의 의견에 반대가 더 많더라도 법관대표가 반드시 그 의견에 기속돼 위임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관대표에게 표결에 대한 자유위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취지의 찬성 주장을 펼쳤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법원 내부는 더욱 공분하는 분위기다. 앞서 6월 임시회의 때는 법관대표들이 검찰의 사법부 수사를 촉구할지에 대해 각 소속법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던 것과 달리, 이번 법관 탄핵 의안의 경우 지난 15일 현장발의 계획이 알려진 뒤 4일 만에 표결이 이뤄져 전체 법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실제 전날 격론 과정에서도 한 법관대표는 “반대하는 판사들도 분명히 있을 텐데, 전국 법관대표 성명으로 탄핵 검토 결의안을 내보내서는 안 된다”며 “원하는 판사들이 연판장을 돌릴 문제”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한 고등법원 판사는 “법관 탄핵 문제는 과반수 의결이라는 민주주의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라면서 “지금이라도 전체 판사들을 대상으로 전자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