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와 이중섭 사이’ 미술은? 퇴조기 아닌 ‘화폭 속의 혁명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02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해학반도도. 12폭 병풍으로 조선 전통에서는 모기 드물게 화려한 채색에 금박을 활용하고 있다. 호놀룰루 미술관 소장

‘대한제국의 미술…’ 전시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서

우리 근현대 미술을 얘기하며 미술사가들은 겸재 정선(1676∼1759), 단원 김홍도(1745∼1806)를 거론한 후 곧바로 이중섭(1916∼1956), 박수근(1914∼1965), 김환기(1913∼1974)의 예술로 넘어간다. 그렇다면 김홍도와 이중섭 사이에 끼여 있는 대한제국(1897∼1910)의 미술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 시기는 한국미술사의 공백기일까.

그동안은 대한제국의 짧은 성쇠, 그리고 일제강점이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당대의 미술은 조선 시대의 우수한 미술 전통이 급격히 쇠퇴한 시점으로 평가절하돼 왔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덕수궁관은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전을 내년 2월 6일까지 연다. 대한제국시대라 불리는 고종(1852∼1919)과 순종(1874∼1926) 시기의 궁중미술을 조명하는 전시다. 전시는 최근 대한제국의 역사가 균형적으로 서술되며 그즈음의 미술 역시 단순한 퇴조기가 아니라 과거의 전통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한편, 외부의 요소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위한 모색기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대한제국 시기가 ‘근대미술사의 기점’임을 전시는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당시의 회화, 사진, 공예 200여 점이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 처음 소개되는 ‘대한황제 고종의 초상 사진’, 김규진, 1905년 추정, 채색사진, 22.9x33㎝. 미국 뉴어크미술관 소장

1부 ‘제국의 미술’에서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며 발생한 미술의 변화와 전개를 살펴본다. 검은 익선관을 쓴 황룡포 차림의 ‘고종 어진’과 대한제국의 군복을 입고 불법을 수호하고 있는 호법신이 그려진 불화 ‘신중도’ 외에 전통적 화원화 기법에 서양화법이 절충돼 19세기 말∼20세기 초 궁중회화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는 ‘곽분양행락도’ ‘해학반도도’ 등을 만날 수 있다. 곽분양행락도는 국내 최초 공개되는 작품이다.

2부 ‘기록과 재현의 새로운 방법, 사진’은 고종을 비롯한 황실 인물들과 관련된 사진으로 구성된다. 육군 대장복 차림의 ‘순종황제’, 국내에 최초로 공개되는 김규진의 첫 고종사진 ‘대한황제 초상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3부 ‘공예, 산업과 예술의 길로’에서는 조선후기 백자항아리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기법은 근대기 도입된 스텐실(stencil·글자나 무늬, 그림 따위의 모양을 오려 낸 후, 그 구멍에 물감을 넣어 그림을 찍어 내는 기법)을 사용한 ‘백자운룡문호’, 국내 최초 공개되는 김규진이 그림을 그리고, 수를 놓은 12폭 병풍 ‘자수매화병풍’을 만나 볼 수 있다.

4부 ‘예술로서의 회화, 예술가로서의 화가’에서는 과거 기능적 장인에 가까웠던 화원 화가가 예술가적인 화가로 변모하는 양상을 조명한다. 풍속화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 채용신의 ‘벌목도’ ‘최익현 유배도’, 근대기 사군자화의 대표작가 해강 김규진의 ‘묵죽도’ 등이 있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대한제국 시기 궁중회화의 표현방식 변화, 사진 장르의 등장으로 인한 시각문화의 변동, 산업공예와 예술공예의 분화, 그리고 예술가적 화가의 대두 등은 근대화시기 변화를 모색했던 치열한 시대의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