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노동시계’ 더 거꾸로 돌리는 총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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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벌인다는 소식에 어리둥절한 사람이 많다. 경제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탄식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문재인 정부는 한배를 탄 ‘촛불 혁명’의 동지로 보였다. 민주노총은 물론 함께 움직였던 참여연대와 민변 출신 인사들이 정부의 핵심 포스트를 차고앉았다. 민주노총의 요구는 정부의 정책이 됐고 각 부처의 장관들은 민주노총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수용하려고 했다. 반면, 경영계의 결사체인 경총은 적폐로 몰렸고 기업은 숨죽이고 있어야만 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의 한국은 물론 오늘날의 어느 다른 나라에서도 노동운동에 이렇게 우호적인 정권은 없었다.

현 정부와 민주노총의 밀월관계는 갑자기 바뀌었다. 경제위기 우려가 커지자 문 대통령은 여·야·정 협의체에서 탄력근로시간제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민주노총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촛불로 바꾼 정권이 배신했다면서 강경 투쟁을 택했다. 국회·검찰·노동관서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정권의 심장부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며 총파업의 동력을 키워왔다. 민주노총의 불법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미온적인 자세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라고 재촉하지만, 민주노총이 투쟁 대오를 유지하면 바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부와 민주노총의 불신은 예고됐던 일이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의 명분으로 적폐 청산, 노조할 권리, 사회 대개혁을 내세운다. 이것은 민주노총과 문 정부가 공유했던 그림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정부 출범 1년이 지나면서 초라해졌다. 정부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노동시장은 붕괴 조짐을 보였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전방위로 급속히 악화했고, 소득주도 성장의 폐해가 취약계층에 집중되면서 소득 불평등은 커졌다. 문 정부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고, 타격이 가장 큰 20대 청년이 등을 돌리고 30∼40대 가장도 이탈 조짐을 보인다. 민주노총과 공유했던 그림을 그대로 밀고 나가면 정권이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한국 경제는 시계 제로 상태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민주노총의 핵심 기반인 자동차산업은 이미 적색경보가 켜졌고, 잘나간다는 대기업도 위험하기 짝이 없다. 1997년 기아차 사태와 이어서 터진 외환위기 직전의 상황과 흡사하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외환위기 당시의 구조조정보다 훨씬 강력한 회오리가 치게 된다. 민주노총의 주력 사업장도 무너지고 대량실업의 악몽이 재현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이 해야 할 일은 총파업이 아니다. 일할 기회가 막힌 청년에게 희망을 주고 한창 일하는 가장이 직장을 잃지 않게 도와줘야 한다. 이게 바로 노동운동이다. 이들을 외면하면 민주노총이 노동자를 배신하는 셈이다.

노동운동이 정상 궤도를 걷는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을 만나기 어렵다. 노동계 출신이 여야 원내대표를 맡고 있다. 바로 직전의 고용노동부 장관도 노동계 출신이고, 여당의 대표와 서울시장은 드러내 놓고 노동계를 편든다. 민주노총의 요구는 대통령의 공약에 그대로 담겼다. 덕분에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왔던 삼성에 노조가 설립됐고, 양대 노총의 조합원은 지난해 한 해 동안 8만 명 가까이 늘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노동운동의 환경에 비춰보면 엄청난 성과다. 그런데도 탄력근로시간제 확대 등의 문제에 반대한다고 총파업을 벌인다면 국민의 거센 반발로 비극에 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