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軍 경계·방어·반격 태세 허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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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옥 前 국방부 차관 前 남북고위급회담 군사분과위원장

‘국군은 죽어서 말하고, 사는 동안 행동한다’는 결의를 다짐하며, 그동안 오늘의 참담한 국가안보 현실을 우려해온 예비역 장군들이 드디어 입을 연다. 오늘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9·19 남북 군사합의 국민 대토론회’에서는 국가 존망의 문턱에 서 있는 절박한 심정으로 340여 명의 예비역 장군이 모여 9·19 남북 군사분야 합의에 관한 토론을 벌인다. 여기에는 전직 국방장관 12명을 포함해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각군 작전사령관 등 각군의 고위 장성 경력자들이 망라돼 있다.

이처럼 최고위 군 수뇌부와 각군 작전지휘관 및 참모경력의 장군 수백 명이 안보 현실을 걱정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국가안보 대토론회를 갖고 대국민 성명서와 결의문을 채택한다는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오늘의 안보 상황이 그 심각성의 도를 넘어 국가 존망의 갈림길에 있음을 말해 준다.

이번 안보 국민 대토론회의 취지에 공감하는 예비역 장군들은, 남북 군사합의는 그 내용 자체도 문제지만, 이런 합의를 낳게 한 현 정부의 검증되지 않은 불안한 대북 시각과 왜곡된 한반도 평화 구상에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정권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본말이 전도된 안보 논리를 드러내고 있다. 첫째, 북한의 핵 개발과 대남 위협을 북한 체제의 내재적 속성에서 찾기보다 남북관계나 한·미 동맹관계에서 찾으려 한다. 둘째,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는 남북관계 개선과 대북 군사 위협의 해소를 통해 이룰 수 있다. 셋째, 대북 군사 위협의 해소를 위해서는 한·미 연합훈련 중지 등 한·미 군사동맹 관계의 약화를 유도해 북한을 안심시켜야 한다. 안보 및 평화에 대한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군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남북 군사합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현 국방정책 관계자들은 남북 군사합의는 충분한 검토를 거쳤고, 시행에 별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듯하다. 또, 앞으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비책을 충분히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 국방정책 당국자들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들의 그런 장담이 과연 모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장할 수 있다는 장담인가? 아니면, 단지 현실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가?”

위기 사태의 발생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경계 및 억제’와 사태 발생 후의 ‘대응’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번 남북 군사합의의 원초적인 문제는, 당장 문제가 될 수 있는 경계태세에 심대한 훼손을 자초했다는 사실이다. 전방감시초소(GP) 제거, 전방 감시정찰비행 금지, 서해 평화수역 설정 등은 앞으로의 불확실한 평화를 명분으로 현재의 확실한 경계 및 억제 체제를 와해시킨 것이다. 이 밖에 대응사격 체제를 감축하거나 뒤로 물리고, 대전차 방벽을 제거하는 등의 조치는 유사시 군의 방어 또는 반격작전을 곤란하게 하는 것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무기 도입 등 전력 증강 문제도 서로 협의한다는 것은 우리 군의 미래 지향 전력 강화도 간섭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과 이런 합의를 해 놓고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장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제 군은 국민 앞에 솔직해야 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명히 말해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국민과 여론에 호소하고, 정부와 국회에 촉구해야 한다. 국방 당국의 현명한 판단과 대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