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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8년 11월 22일(木)
대법원장의 ‘비겁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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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21일(현지시간) 이례적인 성명을 하나 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이날 보도했다. “우리에겐 ‘오바마 판사’나 ‘트럼프 판사’가 없습니다. 우리에겐 자신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헌신적이고 굉장한 판사들만 있을 뿐입니다.” 이 성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자신의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판결을 내린 순회법원 판사를 비판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로버츠 대법원장을 겨냥해 “당신은 ‘오바마 판사들’을 두고 있다”고 공격한 것에 대한 공식 대응이었다. 미국 사법부와 대법원장의 권위는 막강하다. 대통령과 맞짱을 뜨기도 한다. 국민의 손으로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에 부여된 이 같은 권위는 선출된 권력, 즉 행정권력인 대통령과 입법권력인 의회를 법과 양심에 따라 제어해야 한다는 굳은 신념에서 나온다. 이게 삼권분립이다.

서방 선진국 어딜 가나 법원 청사가 검찰 청사보다 높거나 넓게 설계된 데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거다. 한국의 법원·검찰 청사 배치도 그것을 따랐다. 서울고법은 서울고검 청사보다 높고, 내년 초 오픈하는 수원고법은 수원고검과 층수는 같지만 30%나 넓게 지어졌다. 법원과 검찰청은 늘 짝을 이뤄 배열되는데 오른편에 법원이, 왼편에 검찰청사가 들어선다. 이런 청사 배치는 검찰에 대한 법원의 서열 우위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사법부가 행정부 및 입법부와 함께 국가 운영의 세 축을 이루며, 그 중심에 법원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 오랜 전통이다.

사법부의 권위는 기본적으로 외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통해 지켜진다. 사법부는 권력과 여론이 아니라 법과 양심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란 이름으로 판사들이 모여 “사법부를 불신하는 국민 여론을 감안해” 과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판사 탄핵을 촉구했고, 여당이 기다렸다는 듯 호응하고 나섰다. 판사 살생부 명단이 나돌기 시작했다. 사법 적폐가 있다면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건 사법부 안에서 이뤄지는 게 우선이다. 동료 판사의 탄핵을 정치권력과 입법부에 청탁하려는 건 바른길도 아닐 뿐 아니라 축복과도 같은 사법부 독립에 대한 훼손이며, 사법부가 상징하는 삼권분립의 헌법적 가치에 대한 배신이다.

법원 내 특정 서클 출신들로 요직을 채운 사법부와 정치권력이 한 몸이 되고, 전례 없는 사법부의 정치 예속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데에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침묵만 지키고 있다. 반민특위 재판 때 이후로는 처음이라는 특별재판부 설치 법안이 발의된 이후에도 그는 침묵했다. 판사들이 법원 내부망에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 달라”고 고언을 올릴 때도 침묵했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하지 않는 미국 대법원장의 결기가 부럽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위의 성명에서 중요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사법부의 독립은 우리 모두 감사해야 할 중요한 것입니다.” 김 대법원장의 침묵은 비겁하다. 과도한 열정과 광기가 판치는 시대에 침묵은 종종 폭력이 된다. 정치권력과 시류에 편승해 법원의 독립을 스스로 무너뜨린 사법부 수장이었다는 평가를 듣고 싶은가.

minsk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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