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靑 86세대 참모들, 美 모르고 北 ‘대남일꾼’에 못미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냉전이 기승을 부리던 시대 미국에서 한국 공산주의 운동을 연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서대숙 하와이대 명예 교수는 소명감을 갖고 그 어려운 과업을 해냈다. 지난 10월 27일 서울 시내 한 레지던스 호텔 정원에서 늦가을 햇살을 즐기는 서 교수의 표정이 푸근하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1세대 북한학자’ 서대숙 하와이大 명예교수

美·北관계 많이 진전된건 사실
처음상태로 되돌아가진 않을것

文정부, 北에 큰 기대해선 안돼
北은 美와의 관계 최우선시 해

임기내 남북관계진전 결실보다
정권 바뀌어도 교류 가능하게
지속 가능한 시스템 만들어야

북한학 최고 원로인 서대숙(87) 하와이대 명예 교수가 최근 방한해 독립운동과 공산주의 운동 자료 1만여 점을 기증했다. 6·25전쟁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와 함께 북한연구에 헌신한 노학자가 평생 수집하고 연구해온 자료여서 사료적 가치도 크다. 그는 지난 2009년 항일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데 이어 이번에 나머지 자료를 기증했는데 총 3700여 점에 달한다. 이와 함께 조선노동당 창립대회 기록 등 북한 관련 자료 7000여 점은 한신대에 기증했다. 평생 소장해온 학자의 보물을 모두 내놓으면서 섭섭하기도 했을 터인데, 10월 27일 서울 시내 한 레지던스 호텔에서 만났을 때 서 교수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노학자의 미소에선 후학들을 위해 할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올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남북 간 교류가 많고, 정상회담도 세 차례나 열리는 등 남북관계가 급변하고 있다. 요즘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한국과 미국, 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앞으로 이런 일은 수없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북한이 하는 행동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 시도다. 미·북 관계에 따라 뭐가 되든 안 되든 할 것이다. 남북 간에 뭐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무엇이 바뀌었다고 보기 힘들다. 북한에서는 한국을 한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대미 접근의 징검다리 정도로 본다는 말씀인가?

“북한이 한국을 같은 동포라는 차원에서 이용하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진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남북관계 진전이 비핵화는 물론 미·북 관계를 좋게 이끌 것이라고 보는데.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안 된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북한과 미국의 거리는 여전히 멀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히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미·북 관계의 현 단계를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이 미국과 뭘 하려고 하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 모든 것을 되돌리려 하거나 아무것도 안 하지는 못할 것이다.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봤을 때, 중국이 그렇게 놔두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낙관적이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핵 문제 등을 해결해나갈 것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1960~1970년대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발표했고,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을 펴내 주목을 받았는데.

“공산주의 운동사는 컬럼비아대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쓴 책이고, 김일성 평전은 당시 한국에서 김일성을 가짜라고 비판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면 안 된다. 김일성은 진짜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썼다.”

서 교수는 1970년대엔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는 이유로 ‘친북 학자’로 불렸고, 1980년대의 대학가에서는 진보적 북한 전문가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전국의 대학캠퍼스에서 북한바로알기운동이란 미명하에 주체사상 바람이 거세지면서 주사파 학생운동이 주류가 됐을 때엔 ‘반북적 학자’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9년 문화일보와의 첫 인터뷰 때 그는 김일성에 대한 서울대 학생들의 분위기를 전해준 적이 있다. 1989년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북한 정치론을 강의했는데 수업 중 그가 “김일성은 만주에서 항일 운동을 했던 운동가”라고 하면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고 했다. 그러다가 “그런 김일성이 소를 훔쳐다 잡아먹기도 했다”고 하면 학생들이 “어떻게 항일 운동가가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라며 반발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대학가의 주사파 광풍 원인을 강고한 반공사상 때문에 발생한 역작용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북한 공산주의 운동사를 연구하신 분으로서 김정은 체제 출범 후 36년 만에 당 대회를 한 것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잘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늘 있는 그대로 제대로 봐야 한다고 얘기해왔다. 김일성은 북한이라는 국가를 세운 사람인데 그에 대해 ‘진짜요 가짜요’라고 질문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죽은 뒤 아버지 뜻을 지키면서 아버지가 하려던 정책을 견지하며 북한이 붕괴되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군을 키워서 아버지의 뜻을 이어간 인물이다. 자기 스스로 뭘 독자적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부족했다.”

―되돌아보면, 김정일 집권 18년은 체제 방어에 집중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김정일은 철저히 아버지가 해놓은 것을 유지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보면 김정은의 핵 개발도 김정일시대 선군정치의 일환으로 추진됐던 것의 연속선상에 있다.”

―김정은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김정일이 2011년 12월 사망하자, 김정은은 어린 나이에 집권했는데 우선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정책을 지속하면서 젊은 사람답게 북한 개발에 나서는 것 같다. 대미 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을 통치하려는 것 같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기반 위에서 김정은 정권이 작동하는 만큼 북한이 당장 무너지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요즘 북한 붕괴론에 대해선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안 할 뿐 아니라 그런 얘기 하는 사람이 우스워 보인다.”

―북핵을 해결하고 남북이 어떻게 공존해나갈 것인가가 현재의 과제 아닐까.

“미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북한의 핵기술이라기보다, 북한에 우라늄 광산이 있고 매장량도 많다는 점이다. 그대로 두면 핵무기 제조뿐 아니라 우라늄 광산으로 뭘 할지 모르기 때문에 미국이 해결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어 이란 등과 거래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대숙 교수는 만주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는데, 형과 누나들은 해방 후 일본과 미국으로 이주했고 이젠 홀로 남았다고 했다. 가족사가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축소판이라고 했더니 “어려운 시대를 견뎌낸 분들 덕분에 우리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문재인 정부 인사들은 북한의 핵 개발 원인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면서, 미국의 정책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대미인식은 어떤 것인가? 북한 지도부가 미국에 대해 그런 공포심을 갖고 있다고 보는가.

“나는 북한인들이 미국에 공포심을 갖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문제를 얘기하지만, 나는 그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북한이 선전 매체를 통해 주장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 요구는 정치적 레토릭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보는 게 맞는다. 한국의 발전에 대한 북한의 태도, 한·미관계 개선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면밀히 보면, 미국에 대한 그런 공포감은 없다고 본다. 그저 정치적 레토릭 차원의 주장이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관련해 특별하게 주목할 만한 논쟁도 북한엔 없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애틀랜틱 잡지 인터뷰 때 한·미 동맹에 대해서도 국제적으로 동맹관계란 부자연스러운 것이고, 궁극적으로 그런 관계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는데.

“그건 문 특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대통령 특보로서 그런 정책 조언을 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그런 방향으로 나가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은 멀리 있는 강대국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 덕분에 이만큼 성장했다. 그런 한·미 동맹을 깬다면 누구를 위해 왜 깨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남북관계가 얼마나 진전될 수 있다고 보나.

“남북이 어떤 합의를 해도 북한이 이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얼마 전 북한사람들을 미국에서 만났을 때 ‘한국에 돈을 달라고 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얼마를 달라고 해볼까요’라고 다시 묻더라.”

그에게 “언제 그렇게 조언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얼마 전”이라고만 할 뿐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도 공개하기 어려운 모임에서 만난 것일 수도 있어 더 캐묻지는 않았다.

서 교수가 북한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은 2006년 6월이다. 당시는 북한이 9·19 공동성명 합의 후 비핵화 협상을 지속하던 시기였는데, 북한은 미국의 기류를 파악하기 위해 서 교수를 특별초청했다. 서 교수가 평양 방문 후 서울에 왔을 때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당시 북한의 당 연구소와 역사연구소 초청으로 방문했는데 북측이 체제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자 하는 듯했다고 전했다.


당시 방북은 15년 만이었는데 북한이 겉으로는 많이 변했지만 체제는 견고하고 국가시스템도 강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당분간 북한이 붕괴할 가능성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는 게 당시 그의 진단이다. 그때 북측 인사들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한 데 대해 서 교수는 “1980년 이래 당 대회를 한 번도 열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것을 당이라고 할 수 있느냐. 김일성 주석 사후 한 번도 국가경제개발계획을 세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것을 정상적인 국가라고 볼 수 있느냐” “선군정치가 북한 독자적인 시스템인 양 얘기하는데 이것은 1970년대 남미의 군사독재와 유사하다. 국가를 하루빨리 정상 체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을 했다고 했다.

또 당시 북한 인사들이 남북관계에 대해서 조언을 해달라고 한 데 대해 “남북 관계에서 고압적으로 하지 말고 현실감을 익혀라” “우리 말 어순에도 맞지 않는 북남관계를 고집하지 말고 남북관계라고 말하라”고 조언했다고 한 바 있다. 당시 서 교수는 북한 인사들과 대화하면서 “북측이 여전히 대남적화 전략을 버리지 않았는데 노무현 정부와 진보파 인사들이 북측 인사들의 대남 환상을 부추기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는 말도 했다.

―2006년 평양 방문 후 서울에 오셨을 때 “노무현 정권이 북한에 착시 현상을 주고 있으며, 북한은 여전히 적화 통일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당시 북한 초청으로 평양에 갈 때 가서 무슨 얘기를 할까 생각했다. 북한은 이유 없이 초청하지 않는다. 뭔가 목적이 있기에 부른 것이다. 북측에서 초청했을 때 왜 오라고 하느냐 물었더니 별것 아니라고 했다. 방북 때 김기남 노동당 선전담당 비서와 오래 얘기를 하면서 북한이 조금도 굴할 생각이 없고, 자신들의 체제가 강력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느꼈다. 방북 후 귀국해 생각하니, 북한이 나를 초청한 것은 2004년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열린 북한 관련 포럼 때 발언 때문인 것 같았다. 당시 나는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면 안 된다고 모두 주장하는데 그렇게만 생각하면 안 된다. 그 사람들도 살아야 하는데 뭘 믿고 살겠느냐. 북한의 핵 보유를 허용하되 대신 한국과 일본, 대만도 핵무기를 갖게 하면 북핵 문제가 없어질 수 있다. 아시아 몇 나라의 핵 보유를 허용하면 북핵 문제도 없어지고 중국도 견제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했다. 그것이 북측에 특별한 메시지로 들린 것 같다.”

실제 서 교수 방북 후 4개월 만인 2006년 10월 북한은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측 인사들이 당시 서 교수에게 북한의 나아갈 길에 대해 탐문한 것은 핵 실험 강행 후를 대비하기 위한 예비적 작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핵을 한·일·대만 핵무장으로 중화시키자는 구상인데 그렇게 되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붕괴되기 때문에 미국 등에서 반대가 클 텐데.

“당연하다. 당시 포럼에서 대학원생들은 내 의견을 지지한다고 하고,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내 주장을 비판한 적이 있다. 당시 발언이 내가 예상치 못한 파장을 낳아 그만 접었는데 그 이후 북한이 나를 초청했다.”

―2006년 방북 때 북측에서 김정일 전기를 써달라고 했는데 거절했다고 하셨는데.

“그건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농담 비슷하게 제안한 것이다. 김일성 전기를 쓴 것처럼 김정일에 대해 써주면 어떻겠냐고 하길래 ‘김정일은 김일성이 아니다. 김정일이 당신들의 지도자지만 그 정도의 인간은 아니다’라고 했다. 또 ‘김정일에 대해선 잘 모르고 연구도 하지 않아 쓰기 어렵다’고 거절했다. 이와 함께 ‘내 책은 북한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고 만약 또 다른 책을 쓴다 해도 이 같은 관점은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그 방북이 마지막이었나.

“그렇다.”

―김정일이 2008년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6자회담이 중단됐고, 이후 2011년 12월 사망하면서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고모부인 장성택 숙청과 이복형 김정남 살해사건이 이어졌다.

“불행한 일들이지만, 김정은이 자기 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일으킨 일들 같다. 김일성 딸 김경희가 남편을 버리고 조카 쪽으로 돌아선 것이 많은 것을 얘기해준다.”

―북한 요원들이 계획적으로 김정남을 살해한 것은 사우디 요원들이 자국의 비판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터키 주재 사우디영사관에서 살해한 것을 연상시킨다. 독재자가 원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감행하는 것을 보면서 독재 체제의 비인간성과 잔인성을 생각하게 된다.

“김정남 살해는 북한이 저지른 하나의 테러 사건이다. 그렇게 죽일 필요가 없는 인물을 독살해 문제가 되고 파장이 커지자 김정은은 이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듯하다.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정치를 하면서 북한을 바꾸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은의 시도가 북한을 긍정적으로 바꿔보려는 노력이라고 보는가.

“그렇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많이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그런 북한의 행태를 참아주면서 대화를 하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밥 우드워드의 신작 ‘공포’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북한 공격 준비를 사실상 마친 것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미국은 늘 그런 준비를 한다. 그렇지만 최종적으로 대화로 돌아섰고, 이제 북한이 얼마나 진지하게 협상을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결정될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서울대에서 강의할 때 운동권 학생들이 김일성에 대해 갖고 있는 열기를 느꼈다고 얘기하신 적이 있는데 지금 청와대 비서실의 주축인 1980~1990년대 전대협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그 친구들이 내 말을 듣고 생각이 변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간에 미국 정치를 좀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미국 정치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상야릇한 인물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국제적으로 북한을 홍보해주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 없애겠다는 얘기와 모양새만 보여주며 돈 한 푼 안 들이고 트럼프 대통령을 홍보요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지금 한국 정부가 아주 힘든 입장이다. 북한에 뭘 좀 해주려면 제재에 걸리기 때문에 조심스러운데, 북한에서는 뭐 이런 것밖에 안 해주냐는 핀잔을 쏟아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아셈(ASEM) 정상회의 때 유럽을 방문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에게 대북 제재 해제를 얘기한 것은 문제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 남북관계 변화를 확고하게 진전시키려는 의지가 강한 것 같다. 그러나 갑작스레 하늘의 별을 따듯이 무슨 일을 할 수는 없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북한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든다는 구상으로 차근차근 북한과 대화하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국과 일본, 대만 모두를 핵무장시켜 결과적으로 북핵위협을 중화시키자는 아이디어는 계속 견지하고 있나?

“그런 식으로 북핵을 해결하자는 그룹이 미국에 있다. 북한이 갖고 있는 핵무기를 폐기하더라도 또 만들 가능성이 있는 만큼 북핵 문제가 현상적으로 해결된다고 해서 모든 게 풀리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그런 주장을 한다.”

―북핵 폐기가 어렵다는 결론이 날 경우, 한·미 공조를 강화해 한국도 핵을 갖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외교 안보 전문가들도 있다.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 옵션을 위해서라도 문재인 정부는 한·미 공조를 훨씬 더 강화해야 한다.”

―현재 문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문 대통령이 청와대 보좌진을 대폭 개편해 김정은 주변의 대남 일꾼에 필적할 만한 팀으로 구성해야 한다. 김정은을 보좌하는 당·군 인사들은 핵과 대미, 대남 문제를 수십 년간 다뤄온 정예 세력이다. 그런데 청와대 보좌진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대숙 명예교수 약력

△1931년 만주 용정 출생 △1946년 귀국, 서울고(1946~1950), 연세대 정법대 입학(1950), 미국 유학(1952) △미 텍사스 크리스천대 학사(1956), 인디애나대 석사(1958), 컬럼비아대 정치학 박사(1964) △휴스턴대 정치학과 교수(1965~1970), 하와이대 정치학과 교수, 한국학연구소장(1972~1995), 명예 교수, 게이오(慶應)대 방문교수(1995~1996), 연세대 용재 석좌 교수(1999~2000), 경남대 북한대학원장(2000~2001),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UCLA) 초빙 교수(2004~2006)

△저서 ‘한국의 공산주의 운동 1918~1948’(1967), ‘한국의 공산주의 운동 자료집 1918~1948’(1970),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1989), ‘간도 민족 독립운동의 지도자 김약연’(2008) 등 다수.

인터뷰 = 이미숙 논설위원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