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 “위기때 소임 다하는 ‘여성의 뚝심’ 전하려했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혜수는 “뭔가를 결정하면서 확신이 드는 경우가 없다. 늘 그래서 두렵다”며 “후배들이 ‘주연의 책임감을 어떻게 극복하냐’는 질문을 하면 대답할 말이 없다. 내 거 하기 바빠 배려하고 챙길 수 없다”고 토로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장면. 호두앤유앤터테인먼트 제공

- IMF 배경 ‘국가부도의 날’ 주연 김혜수

“영어로된 경제용어 소화하려
매일 2시간씩 연습에 매달려

좋아하던 뱅상 카셀과 첫호흡
숨소리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

바람직한 여성캐릭터 연기통해
여배우 영역확장에도 도움되길”

“전투적인 여성을 돋보이게 하기보다는 소임을 다하는 인물의 진심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1997년 외환위기 상황을 그린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28일 개봉)의 주연을 맡은 배우 김혜수(사진)는 이번 연기에서 주안점을 둔 부분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국민의 85%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그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역을 맡았다.

일주일 뒤 국가부도 사태가 닥칠 거라는 보고서를 쓴 한시현은 위기 상황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와대와 정부는 비상대책팀을 꾸리지만 비밀을 유지한 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자고 주장하는 재정국 차관(조우진)과 한시현이 부딪히며 내분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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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 속에서 종금사 출신 금융맨 윤정학(유아인)은 실물경제 위기를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갑수(허준호)는 백화점에서 받은 어음이 휴지 조각이 되자 파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김혜수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밝혔다.

“저도 삶의 기준과 질이 엄청난 변화를 겪은 그 시대를 경험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고 있었어요. 당시 금 모으기에 참여하면서도 내막은 몰랐잖아요. 등장 인물과 일부 내용은 가공됐지만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이 그때 왜 고통받았는지를 정확히 알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출연을 결정했어요. ‘재미있게 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에게 “20년 전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냐”는 말을 건네자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과 주변 지인들이 겪은 일들을 소개했다.

“기억이 조각조각 남아 있어요. 연기자인 저는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지만 지나고 보니 IMF 사태 직후부터 가벼운 소재의 영화가 많아졌던 것 같아요. 너무 힘들고, 각박해지고, 삶이 헝클어졌으니 덜 무겁고 웃을 수 있는 작품이 나온 거죠. 외국에 유학 가 있던 친구들은 포기하고 돌아왔어요. 남은 친구들은 학업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동에 시달렸고요. 삶의 터전을 떠나 갑자기 이민 간 경우도 있었고, 자영업을 하던 친인척들이 가게 문을 닫기도 했죠.”

그는 인터뷰 내내 ‘진정성’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한시현이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해내려는 멋진 여성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뚝심 있는 인물로 이해했어요. 그런 인물을 진정성 있게 표현하려면 눈빛이나 손짓연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죠. 제가 현장에서 어떻게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요. 욕심내며 과장되게 캐릭터를 강조하기보다는 최악의 위기를 막아내려는 사람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다가가길 바랐어요.”

IMF 총재 역을 맡은 할리우드 배우 뱅상 카셀과 김혜수가 영어로 협상을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김혜수는 영어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4개월 넘게 준비를 했다고 한다.

“대부분 경제용어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가 많았어요. 거기다 제가 좋아하는 뱅상 카셀과 첫 호흡을 맞추는 연기라서 기대와 궁금증이 일었어요. 영어 선생님께 대사를 쉬운 말로 바꿔달라고 했고, 정확히 이해하며 매일 2시간씩 연습했어요. 연기할 때는 카셀의 작은 표정과 숨소리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했고요.”

다큐멘터리처럼 전개되다 보니 영화적 재미는 조금 떨어지지만 김혜수의 연기만큼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번 연기를 통해 여배우의 영역을 확장하며 큰 성장을 할 거란 기대감이 든다.

“영화의 성패와 관계없이 매 작품 배우로서 성장하는 지점이 있어요. 저는 다른 배우들보다 꽤 오랫동안 조금씩 성장해왔어요. 20대 후반부터 10년 정도 걸렸어요. 물론 지금도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이고요. 이 영화가 여배우의 영역 확장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바람직한 여성 캐릭터를 통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